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말꽃삶 18 나의 내 내자



  우리말은 ‘나·너’입니다. ‘나·너’는 저마다 ‘ㅣ’가 붙어서 ‘내·너’로 씁니다. “나는 너를 봐”나 “내가 너를 봐”처럼 쓰고, “네 마음은 오늘 하늘빛이야”처럼 쓰지요. 그리고 ‘저·제’를 씁니다. “저로서는 어렵습니다”나 “제가 맡을게요”처럼 쓰지요.


 my 私の 나의


  어느새 참으로 많은 분들이 ‘나의(나 + 의)’ 같은 말씨를 뜬금없이 씁니다. 이 말씨는 오롯이 ‘私の’라는 일본말을 옮겼다고 할 만합니다. 일본사람은 영어 ‘my’를 ‘私の’로 옮기더군요.


  우리나라는 스스로 영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첫째로는 우리나라로 들어온 선교사가 영어를 알리고 가르쳤습니다. 이들 선교사는 ‘한영사전’까지 엮었지요. 이다음으로는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와서 억누르던 무렵 확 들어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손으로 엮은 책으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어요. 선교사가 가져온 책으로 배웠거나, ‘일본사람이 영어를 배우려고 일본사람 스스로 엮은 책’을 받아들여서 배웠습니다.


  일본사람은 웬만한 데마다 ‘の’를 붙여서 풀이했고, 일본책으로 영어를 배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말씨 ‘の’를 ‘-의’로 적었어요. 일제강점기에 ‘-의’ 말씨가 부쩍 퍼졌습니다. 일본이 물러난 뒤에 비로소 우리 손으로 영어 배움책(교재)하고 낱말책(사전)을 엮는데, 웬만한 책은 일본 배움책하고 낱말책을 고스란히 옮겼어요. 겉으로는 한글이되 속으로는 일본말씨가 ‘영어를 배우는 길’에 밀물처럼 쏟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내는 영어 낱말책조차 아직 ‘my = 나의’로 풀이합니다. 우리말 ‘내’나 ‘제’로 못 적습니다.


  우리말로 ‘내·제’나 ‘우리’를 써야 할 곳에 ‘나의’를 적는 말씨가 몹시 번졌어요. “나의 가족”이나 “나의 마을”이나 “나의 바람”이나 “나의 살던 고향”이나 “나의 손”이나 “나의 엄마”나 “나의 여름”이나 “나의 작은 집”이나 “나의 투쟁”처럼 끝없이 퍼집니다.


  우리는 우리 말씨를 차근차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 집”이나 “우리 마을”이나 “내 바람”이나 “내가 살던 마을” 같은 수수한 우리 말씨를 찾아낼 수 있을는지요. “내 손·우리 손”이나 “우리 엄마”나 “여름·올여름·내가 보낸 여름”이나 “이 작은 집·작은 집·우리 작은 집”이나 “나는 싸운다·싸우다·우리는 싸운다”처럼 우리답거나 나다운 말씨를 차근차근 돌아볼 수 있을는지요.


 내 나라 내 집 


  ‘나의’가 아닌 ‘내’로 적어야 알맞은데, ‘내’를 쓸 적에 외려 안 어울리는 곳이 있습니다. “내 나라 내 겨레” 같은 자리입니다. “내 집”이라 할 적에는 제대로 갈라야 하지요.


다시 만난 내 나라 문화와 내 부모의 언어는 그 존재만으로도 큰 위로이자

→ 다시 만난 우리나라 삶과 우리 어버이 말은 그대로 반갑고

→ 다시 만난 이 나라 살림과 우리 어버이 말은 그저 다독여 주고


  나라나 겨레나 어버이를 가리킬 적에는 ‘내’가 아닌 ‘우리’를 씁니다. “내 아버지”가 아닌 “우리 아버지·울 아버지”입니다. 또는 ‘우리’를 안 붙이고서 “아버지”라고만 단출히 씁니다. “우리나라”나 “우리 옛살림”이나 “우리 노래”로 써야 알맞을 텐데, “이 나라”처럼 ‘이’를 써도 어울립니다. 곧 “이 나라 이 겨레”라 할 수 있습니다. 집도 “이 집”이라 할 수 있고요.


  스스로 장만해서 살아가는 집이라는 뜻으로 “내 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이 집에 나 혼자 안 산다면 “우리 집”이라 해야 어울려요.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어버이가 함께 있으면 “내 집”이 아닌 “우리 집”입니다.


 내자 안해 아내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다음처럼 풀이합니다.


내자(內子) : 1. 남 앞에서 자기의 아내를 이르는 말 2. 옛날 중국에서, 경대부의 정실(正室)을 이르던 말

아내 :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 ≒ 규실·내권·처·처실

처(妻) :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 = 아내


  1920년에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朝鮮語辭典》은 다음처럼 풀이하지요.


內子 : 自己の妻の稱.

안해 : 妻

妻 : つま


  1940년에 문세영 님이 펴낸 《조선어사전》은 다음처럼 풀이하더군요.


내자(內子) : 자기의 안해

안해 : 1. 남편이 있는 여자. 아낙. 妻 2. 남편이 자기의 처를 일컫는 말.

처(妻) : 안해


  우리는 언제부터 ‘안해’라는 이름을 썼을까요? 일본은 일찌감치 ‘內子’라는 한자말을 썼습니다. ‘처(妻)’는 그저 한자말입니다. ‘아내·안해’는 “= 안사람”입니다. “안에 있는 사람”이요, “집에 머물며 집일을 하는 사람”이란 뜻을 담는 얼개입니다.


  우리 발자취를 보면, 임금이나 벼슬아치가 아닌, 흙을 가꾸어 살림을 하면서 아이를 사랑으로 낳은 여느 사람들은 집일을 가시버시가 함께 맡았습니다. 가시(여성)만 집일을 하지 않아요. 버시(남성)도 집일을 함께하지요.


  아기가 태어나면 세이레 동안 어머니가 어두운 바깥채에 가만히 누워서 몸을 추스르면서 아기를 돌보는데, 아기를 낳는 어머니는 집일을 마땅히 못 해요. 그러면 누가 아기 어머니를 먹이고 입힐까요? 바로 지아비이지요. 세이레 동안 누가 집일을 할까요? 바로 사내인 아버지입니다.


  모든 살림집에 할머니가 함께 살았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단출히 살아가는 조그마한 집을 헤아리면 쉽게 실마리를 얻을 만해요. 지난날 흙사람(농민)은 손수 밥옷집을 건사했습니다. 순이(여성)하고 돌이(남성)는 나란히 밥옷집 살림을 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한쪽은 바깥일을 하고 한쪽은 집일을 하는 얼개가 아닌, 함께 바깥일이며 집일을 하던 살림이었어요.


  일본말 ‘내자’를 아직까지도 쓰는 낡은 분이 이따금 있어요. 1992년에 나온 《全斗煥 육성증언》(조선일보사)을 보면 “그래서 공식 행사에서 내자가 잘 따라나서지 않으려고 해요(174쪽)” 같은 대목이 있더군요. 예전에 나라지기(대통령)를 맡은 적 있는 전두환 씨는 ‘내자’라 하더군요. 아마 이이뿐 아니라 나이든 적잖은 사내는 일본말 ‘내자’를 오래도록 그냥 썼으리라 봅니다.


 여보 짝 곁님


  조선 무렵에도 ‘안해’란 말을 썼다 하지만, 이 말을 오늘날 그대로 쓰기에는 걸맞지 않다고 느낍니다. ‘순이 = 안사람’이라는 틀이나 굴레는 옳지 않거든요. 가시버시를 이루는 짝을 가리키는 이름을 새롭게 헤아릴 노릇입니다.


  먼저 오래도록 쓴 ‘여보’가 있습니다. ‘이녁’도 있어요. 가볍게 부르는 이름인데, 수수하게 ‘짝·짝꿍’이 있으며, ‘사랑’으로 가리킬 만합니다. 또는 ‘사랑꽃’으로 가리킬 수 있는데, ‘짝·짝꿍’이나 ‘사랑·사랑꽃’은 순이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돌이도 이 이름으로 가리킬 수 있습니다.


  여기에 ‘곁님·곁씨’ 같은 이름을 새로 지어서 쓸 만해요. 곁에 있으면서 함께 집안을 돌보고 살림을 일구는 사이라는 뜻을 ‘곁님·곁씨’에 담는 얼개입니다.


  우리말은 순이돌이를 억지로 안 가릅니다. 우리말은 순이돌이를 아우릅니다. ‘나·너’도 ‘우리’도 순이돌이를 가르지 않아요. 일본말 ‘내자’뿐 아니라 ‘안사람·아내·안해’ 같은 슬픈 말도 고요히 내려놓고서 새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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