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미안하다
서정홍 지음 / 단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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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1.23.

노래책시렁 382


《아내에게 미안하다》

 서정홍

 실천문학사

 1999.1.7.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날을 돌아보면, 언제나 두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곁님하고 일구는 보금자리를 곱씹으면, 늘 곁님한테서 배웁니다. 어버이나 짝꿍으로서 뭔가 어설프거나 어리석거나 엉뚱한 짓을 벌인 뒤에 “잘못했습니다. 차근차근 뉘우칠게요.” 하고 읊곤 합니다. 느긋이 맡아서 천천히 하면 될 노릇인데, 서두르거나 지나치게 짊어지느라 몸앓이를 하거나 드러눕고 말아요. 언제나 똑같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잘못했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찬찬히 다스리면 되어요. 더 느슨히 이야기를 하고, 더 곰곰이 말을 섞고서, 하나씩 돌보면 즐겁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하다》를 스물 몇 해 만에 되읽었습니다. 적잖은 분들은 ‘나라(정부·사회)’를 갈아엎거나 바꿔야 한다고들 외칩니다만, ‘집(보금자리)’을 돌아보고 보듬으면 될 뿐입니다. 나라부터 바로서야 한다고 외치는 분이 많습니다만, 저마다 이녁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돌아보면, 나라는 저절로 바뀌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어버이라면 아이들이 사랑을 물려받을 집을 일굴 노릇이에요. “애 좀 낳아라!” 하고 읊는들 애를 낳을까요? 아니지요. 어버이로서 사랑집을 가꾸면, 어린이는 자라고 자라서 스스로 아이를 낳아요. 길은 모든 살림집에 수수하게 있습니다.


ㅅㄴㄹ


값비싼 안주가 / 값비싼 그리움을 낳는 일도 없고 / 값싼 안주가 / 값싼 그리움을 낳는 일도 없다 / 닭똥집에 소주 마시고 / 취한 날이거나 / 소고기에 맥주 마시고 / 취한 날이거나 /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 그리움이 되는 건 / 우리들의 사랑이었다 (우리들의 사랑 1/11쪽)


한 마리 천 원 하던 고등어가 / 한 마리 오백 원으로 값이 떨어지면 / 집집마다 고등어 굽는 냄새 / 화장실 문을 열면 / 아랫집 고등어 굽는 냄새 (내가 사는 곳/21쪽)


어젯밤에도 / 밤늦도록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 깊이 잠들지 못하고 울고 있던 아이들을 바라보니 / 나는 큰 죄인이 되어버립니다 // “영교야, 울지 말거라 / 오늘은 아빠 잔업 않고 일찍 올 테니” / 애써 타일러보지만 / 모기 소리만 하게 “예”라고 대답하는 말에 / 잠시 마음이 놓이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맞벌이 부부의 일기/12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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