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3년 11월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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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6


“나무 곁”하고 “나무 밑”은 어디일까? “나무 아래”는 어디일까? 우리는 “가랑잎을 밟으며” 걷고, “눈밭을 거닐” 뿐인데, “가랑잎 위를 걷다”나 “눈 위를 걷다”처럼 잘못 쓰는 사람이 많다. ‘위·밑·아래’를 가려서 쓸 줄 아는 글눈을 잃는다면, 왼오른을 살피는 삶눈도 함께 잃을 텐데 싶다.



바닷방울

밝게 울리는 소리를 담는 ‘방울’인데, ‘물방울’이나 ‘이슬방울’이나 ‘눈물방울’ 같은 데에 붙인다. ‘빗방울’이라고도 한다. 맑고 밝으면서 동그란 숨결을 나타내는 ‘방울’이니, 바닷물을 마주할 적에도 철썩철썩 튕기며 솟는 맑고 밝고 동그란 물빛을 ‘바닷방울’이라 할 만하다.


바닷방울 (바다 + ㅅ + 방울) : 바다를 이루어 흐르는 물에서 작고 동글게 이루는 하나.



위밑옆

위하고 아래를 함께 가리킬 적에는 ‘위아래’라 한다. 위랑 밑을 나란히 나타낼 적에는 ‘위밑’이라 한다. 위에 아래에 왼에 오른을 함께 가리킨다면? ‘위아래왼오른’처럼 조금 길 수 있는데, 단출히 ‘위밑옆’이라 할 만하다. ‘위밑곁’이라 해도 어울리고, ‘위밑둘레’라 해도 또렷하다. 생각해 보면 어디나 잘 볼 수 있고, 어느 곳이든 알맞게 그릴 수 있다.


위밑옆 (위 + 밑 + 옆) : 위와 밑과 옆(왼오른)을 함께 가리키거나 묶거나 나타내는 말. (= 위밑곁·위밑둘레·위아래옆·위아래곁·위아래둘레. ← 상하좌우)



나무묻이

씨앗을 흙에 묻는다. 흙에 묻힌 씨앗은 흙결을 가만히 품으면서 사르르 녹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주검을 흙에 묻는다. 숨결이 빠져나온 몸이 흙으로 돌아가도록 포근히 묻는다. 때로는 주검을 불로 사른다. 때로는 주검을 물에 놓는다. 씨앗은 ‘씨묻이·씨앗묻이’요, 주검은 ‘흙묻이·불묻이·물묻이’를 한다. 때로는 나무 곁에 주검을 묻는다. ‘나무묻이’를 하면서 고요히 시나브로 흙으로 돌아가서 숲빛으로 녹아들기를 바란다.


나무묻이 (나무 + 묻다 + -이) : 나무 곁이나 둘레에 묻다. 나무 곁이나 둘레에 묻으면서 기리거나 되새기거나 돌아보거나 생각하다. 죽은 몸을 나무 곁이나 둘레에 묻으면서 숲빛으로 기리거나 되새기거나 돌아보거나 생각하다. (← 수목장樹木葬)



길죽음

그만 길에서 죽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는 숲짐승이나 들짐승이 길에서 죽는 일이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두 가지 ‘길죽음’이 있다. 사람도 슬프게 길에서 죽고, 숱한 짐승도 길에서 부릉부릉 쇳더미에 치이거나 밟혀서 죽는다. ‘치여죽다’가 길죽임인 셈이고, 벼락죽음이요 슬픈죽음이다. 이웃이나 동무가 없이 홀로 길에서 죽으면 쓸쓸죽음에 외죽음이다. ‘길눈물’을 그칠 수 있도록 부릉부릉 내달리는 길을 줄여야 할 텐데 싶다.


길죽음 (길 + 죽다 + ㅁ) : 길에서 죽음. 숨을 다하여 길·바깥·한데에서 죽는 일이나 주검. 길에서 자동차에 치여서 죽는 일이나 주검. (= 길에서 죽다·길주검·길눈물·치여죽다·슬픈죽음·개죽음·벼락죽음·슬픈죽음·쓸쓸죽음·외죽음. ← 로드킬, 객사客死, 사고事故, 교통사고)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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