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혐오 : 우리가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나누면서 이 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이라면, 담벼락을 안 쌓는다. 우리는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나눌 마음이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새롭게 받아들여서 꽃으로 피어날 마음이 없는 탓에 담벼락을 쌓아서 해바람비를 몽땅 가리려 든다. 오늘날 배움터(학교)를 보자. 아침이고 낮이고 미닫이(창문)를 꽁꽁 싸매고서 형광등을 켠다. 아무리 밝은 낮이어도 햇빛을 누리려 하지 않고, 어린이도 어른도 스스로 잿더미(시멘트 건물)에 갇힌다. 해를 안 바라보는 사람이 무엇을 제대로 볼까? 바람을 제대로 맞이하지 않는 사람이 무엇을 제대로 생각할까? 비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 사람이 무엇을 제대로 느낄까? 머리에 부스러기(지식·정보)는 잔뜩 쌓는 배움터요 나라요 일터요 새뜸(신문·방송·유튜브)이되, 정작 푸른별(지구)이 어떤 들숲바다에 풀꽃나무에 해바람비로 어우러지는지는 살갗으로도 손끝으로도 눈이나 발바닥으로도 안 가까이한다. 그저 멀리한다. 풀을 들여다보지 않고서 식물도감이나 환경책만 읽는들, 어떻게 숲을 돌보나? 나무를 씨앗으로 심지 않고서 나무도감만 읽거나 환경운동에 나선다면, 어떻게 숲빛을 가꾸나? ‘내가 밀거나 뽑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저 놀리거나 비아냥대거나 삿대질하거나 미워해도 된다는, 이런 밉질(혐오)을 ‘표현하는 자유’라고 여긴다면, 이 나라에는 아무런 빛(민주·자유·해방·독립·공유·평화)이 없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토론’이라고 말로는 읊되, ‘내가 안 밀고 안 뽑고 안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여겨듣지 않는데다가, ‘막말(욕설·비하·혐오)’이 아닌 상냥한 말씨로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면, 저놈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얼치기일 뿐이다. 그놈들이 우리를 먼저 미워했을까? 우리가 그놈들을 먼저 미워했을까? 누가 먼저 미워했든 둘 다 미워하는 마음이 똑같다. 닭이냐 달걀이냐를 덧없이 따지기에 싸우고 다투고 겨루고 치고받는다. 사람으로서 사랑을 지을 길을 헤아리지 않으니 그저 싸우고 미워할 뿐이다. 내가 사람이라면, 너도 사람이다. 네가 사람이라면, 나도 사람이다. 이 하나, 서로 사람인 줄 알아보고서, 서로 사람으로서 나눌 사랑을, 둘 사이에서 어깨동무로 지으려 할 적에 비로소 ‘말길’을 트면서 새길을 연다. 2014.11.11.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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