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11.4.

수다꽃, 내멋대로 52 병원을 안 가는



  이웃님 쇳덩이(자동차)에 같이타서 구례읍을 지나는데, 다른 쇳덩이가 뒤에서 꽝 들이받았다. 꽤 세게 받아서 덜컹 흔들렸고, 목이 삐끗했고, 왼무릎이 욱씬거렸다. 뒤에서 우리를 들이받은 이는 할아버지. 늙은 우리 아버지보다 조금 젊은 할아버지인데, 너무 서두르면서 빨리 몰더라. 왜 꽝꽝 치거나 부딪히겠는가? 느긋하게 안 달리니까 들이받는다. 차근차근 안 모니까 그들 스스로도 다치거나 죽고, 이웃도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예전에 서울에서 아직 살던 무렵, 곧잘 두바퀴(자전거)로 서울 한가람길을 달렸는데, 숱한 ‘달림이(레이서)’가 그야말로 쌩쌩 바람을 가르는 소리까지 내면서 휘젓더라. 요새도 똑같으리라. 값나가는 두바퀴를 몰고서 자전거옷까지 차려입은 그들은 거의 다 쇳덩이도 몬다. 사람들은 쇳덩이나 두바퀴만 지나치게 빨리 몰지 않는다. 삶도 똑같이 지나치게 휘몰아친다. 책을 빨리 읽어치워야 할 까닭이 없고, 아이들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고, 글을 빨리 깨쳐야 하지 않고, 책을 빨리 많이 팔아치워야 하지 않고, 돈을 빨리 많이 쌓아올려야 하지 않고, 이름을 빨리 높이 날려야 하지 않고, 그러니까 빨리 달려서 빨리 살다가 빨리 죽어야 할 까닭이 없다. 엊저녁에 들이받히고 나서 왼무릎이 내내 부어서 욱씬거렸고, 밤새 몸앓이를 했다. 그러나 돌봄터(병원)에 갈 마음은 터럭조차 없다. 나는 1992년에 마지막으로 돌봄터를 갔고, 이듬해 1993년에 발목이 접질려서 뼈맞춤을 하는 곳에 절뚝거리면서 한 달을 드나든 적이 있지만, 돌봄터에는 안 간다. 서른 해 넘게 돌봄터와 등진다. 그동안 나를 들이받은 쇳덩이가 여럿 있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던 1998년에 뺑소니를 겪었고, 2003∼2007년에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며 두바퀴(자전거)로 충주와 서울을 오가는 길에 석 판 뺑소니를 치른 적 있다. 뺑소니이든 끼어들기이든 뭐든, 길에서 벌어지는 모든 ‘들이받기(교통사고)’는 “서두르며 빨리빨리 달리는 버릇” 탓에 싹튼다. 다른 이를 들이받은 이는 하루빨리 쇳덩이를 버려야 한다. 종이(운전면허증)도 내려놓아야 한다. 이분들은 걸어다녀야 한다. 걷기에 멀다면 택시를 타야 한다. “서두르며 빨리빨리 달리는 버릇”에 사로잡힌 이들은 쇳덩이를 몰아서는 안 된다. 30으로 달리는 길을 70으로 내달리거나, 100으로 달리는 길을 150을 밟거나, 120까지 달리는 길을 170으로 휘젓는 이들은 모조리 종이(운전면허증)를 걷어치워야 한다. 죽음길에 뛰어드는 바보짓을 멈추도록 옆에서 도와야 한다. 쇳덩이를 몰다가 말썽을 일으킨 사람은, 아무리 조그맣게 들이받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외판(원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끝맺고, 다시는 쇳덩이를 몰지 못 해야 맞다. 그래야 이 땅에서 어린이가 마음껏 걸어다니거나 뛰놀 수 있다. 이렇게 해야 시골이며 서울(도시)에서 할매할배가 느긋이 걸어다닐 수 있다. ‘가벼운 접촉사고’라고? 웃기지 마라. ‘가벼운 교통사고’란 아예 없다. 그저 ‘말썽(사고)’이다. 가볍게 건드리거나 부딪혔어도 종이(운전면허)를 멈춰야 한다. 그만큼 쇳덩이는 길에서 사람을 아슬아슬하게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총칼(무기)이 된다. 그나저나 나는 돌봄터에 안 간다. 여러 판에 걸쳐 뺑소니를 겪었어도, 달포쯤 앓아눕거나 끙끙대면서 나았다. 시골로 삶터를 옮겨 풀꽃나무를 곁에 품노라면, 모든 몸앓이를 천천히 녹여서 풀어낼 수 있다. 한동안 다리를 푹 쉬어서 살리자고 생각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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