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잎샘 (2022.3.18.)

― 광주 〈유림서점〉



  봄볕하고 가을볕은 닮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거나 썰렁하되, 낮에는 따끈따끈한 봄가을입니다. 봄이 깊을수록 아침저녁이 길고, 가을이 깊을수록 아침저녁이 짧아요. 봄이 깊을수록 들숲이 푸릇푸릇 일어나고, 가을이 깊을수록 숲들은 누릇누릇 가라앉습니다.


  봄은 천천히 오기에 봄이지 싶어요. 가을은 천천히 가기에 가을이지 싶습니다. 봉긋봉긋 마치 말없이 돋아나는 듯한 봄입니다. 울긋불긋 온누리 빛깔마다 차분히 노래하는 듯한 가을입니다.


  살며시 광주에 들릅니다. 〈유림서점〉에 찾아가서 책빛을 헤아립니다. 손길을 많이 타는 책이 있고, 좀처럼 손길을 탈 새가 없는 책이 있습니다. 무척 팔리다가 잊히는 책이 있고, 거의 안 팔렸으나 반짝이는 책이 있습니다. 책물결을 바라보다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 쓰고 왜 읽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물려주나요?


  전남 광주는 고을이름을 우리말로 풀어서 ‘빛고을’이라 일컫는데, 두 손에 책내음이 피어나지 않는 빛이란 없겠지요. 다만, 어느 책이건 마음으로 짓고 읽고 새기고 나누면 아름답습니다. 어떤 책이라도 마음이 스미지 않거나 부풀리거나 꾸미거나 치레한다면 덧없습니다.


  잎샘바람이 붑니다. 계림동 책골목은 스산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오래도록 책골목일 수 있도록 작은 헌책집이 드문드문 자리를 잇습니다. 그저 이분들이 마지막 일손을 내려놓는다면 계림동도 광주도 빛을 잃으리라 느낍니다. 딱히 글을 쓰거나 책을 쓴 적이 없는 조그마한 헌책집지기는 늘 말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남기고 새겼어요. 책먼지를 닦고, 묵은책을 되살리면서 책씨앗을 심었습니다.


  비껴갈 수 없다면 느긋이 누릴 노릇이에요. 앙금도 멍에도 수렁도 스스럼없이 맞아들이면서 한 발짝 두 발짝 내딛습니다. 말끔히 털어낼 수 있어도 즐겁고, 어쩐지 안 털려도 즐겁습니다. 어떤 하루여도 활짝 웃음꽃으로 일어설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다 다르게 빛이거든요.


  마음닦기(명상)란, 마음을 시원하게 틔우는 빛줄기를 품는 길일 테지요. 책읽기란, 눈빛을 환하게 틔우는 빛살을 펴는 길일 테고요. 살림짓기란, 우리 손발로 하루를 새롭게 틔우는 빛꽃으로 나아가는 길이리라 여겨요.


  온누리 아이들이 맞이할 열여섯 살이며 스무 살을 기다리면서 제 열여섯 살이며 스무 살을 떠올립니다. 이무렵은 가장 눈부신 나이는 아니되 새롭게 바라볼 나이라고 느낍니다. 서른 살도 쉰 살도 가장 눈부시지는 않더라도 참으로 반짝이는 때예요.


ㅅㄴㄹ


《車窓으로 본 유럽》(장한기, 우성문화사, 1980.10.5.)

《파브르의 작은 정원》(마거릿 J.앤더슨 글·마리 르 그라탱 키스 그림/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3.7.10.)

《사랑으로 가는 길》(홍명희, 혜화당, 1990.12.20.)

《뫼비우스의 띠와》(안희두, 온누리, 1988.5.20.)

《바다 언덕을 넘어서》(김한성, 호도애, 1992.7.20.)

《겨울에 내리는 비》(안태경, 글방, 1986.12.15.)

《가난한 행복》(조철규, 참깨, 1988.12.20.)

《성공과 좌절》(노무현, 학고재, 2009.9.25.)

《닥치고 정치》(김어준, 푸른숲, 2011.10.5.첫벌/2011.10.29.23벌)

《불교에서 본 마음과 최면 전생》(현오, 논장, 2001.6.10.)

《회보 319호》(편집부, 전라남도 교육위원회, 1985.11.25.)

《엄마하고 나하고》(박경종, 백록출판사, 1981.11.10.)

《한국곤충명집》(한국곤충학회·한국응용곤충학회 엮음,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4.5.28.)

《한국식물도감 화훼류 1》(리휘재, 문교부·삼화출판사, 1964.10.30.)

《한국동식물도감 7 동물편(포유류)》(원병휘, 문교부·삼화출판사, 1967.10.20.)

《세계의 명장 진창현》(진창현, 혜림커뮤니케이션, 2002.7.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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