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3년 10월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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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5


단단하게 쌓거나 올리면서 ‘담기에(담다)’ ‘담·담벼락’이고, 아우르거나 어우르듯 너랑 나를 함께 일컫는 결을 품기에 ‘울·울타리’이다. 너랑 나를 아우르는 ‘우리·울’에는 틈이 있다. 울타리도 틈이 있어 바람이나 풀벌레나 새가 드나든다. 단단히 세운 담이기에 비바람을 막기에 좋으면서, 자칫 안쪽에서 끼리끼리 힘(권력)을 부리기도 한다. 낱말 하나로 가리키는 모습은 같으나, 이 낱말을 다루는 마음은 모두 다르다. 다르기에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 다르기에 뚝 끊거나 자르거나 쳐내야 할까?



글담

담을 쌓으면서 비바람을 가리고 집을 튼튼히 돌볼 수 있다. 담을 쌓기에 아무도 드나들지 못 하고, 안팎이 서로 막혀서 마음이나 생각을 못 나눌 수 있다. 담이란, 좋거나 나쁘지 않다. 틈을 없애는 담이고, 드나들 길을 막는 담이다. 담을 올리기에 누가 쳐들어오기 어려울 만하고, 담을 올린 터라 ‘안쪽 사람’끼리 어울리면서 ‘나눠먹기’를 이루기도 한다. 어떤 글담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삶이 다르고, 글담을 어떻게 일구거나 가꾸느냐에 따라, 우리가 ‘말을 옮기는 글’이 확 다르게 마련이다.


글담 (글 + 담) : 1. 글을 담은 곳. 글을 담아서 오래오래 잇도록 두거나 돌보는 곳. ‘담다’는 “단단하게 두른 안쪽에 두어서 밖으로 새거나 빠지거나 나가지 않도록 하다”를 나타내기에, 글을 지키거나 돌보려고 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2. 글로 쌓거나 세우거나 막거나 둘러친 담. 글을 써서 얻은 돈·이름·힘으로 담을 둘러치고서 끼리끼리 어울리는 사람들과 이들이 하는 짓을 가리키는 말. 글로 얻는 돈·이름·힘을 담 안쪽에서 그들끼리 나누면서 바깥쪽을 쳐내거나 가로막거나 끊거나 밟으면서 돈·이름·힘을 더욱 키우는 사람들과 짓거리를 나타내는 말. (= 글담벼락·글울·글울타리·글힘. ← 문단권력, 문학권력)



라온눈

옛말 ‘라온’이라지만, 오늘날 적잖은 사람들은 ‘라’라는 소리하고 ‘온’이라는 소리가 어울리는 이 낱말을 무척 따스하고 넉넉하면서 반갑게 맞이한다. 노래를 부를 적에 저절로 흘러나오는 소리인 ‘라·라랄라·랄랄라’이다. 셈으로 치면 ‘100(百)’을 나타내고, ‘모두’하고 비슷한 뜻이면서 ‘올·알’하고 맞물리는 ‘온’이다. “노래하는 모든 숨결”이라면 더없이 즐거울 만하다. 노래하는 모든 숨결로 바라보는 ‘눈’이라면 언제나 스스로 기쁨씨앗을 심으면서 사랑빛을 밝히는 아름길로 나아가는 밑바탕을 이룰 만하다.


라온눈 (라 + 온 + 눈) : 즐겁게 바라보거나 누리거나 받아들이거나 살아가는 눈. (= 라온·라온빛·기쁨·기쁨눈·기쁨빛·즐거움. ← 행복, 행복지수, 복福, 해피happy, 환희, 만족, 만족감, 만족도, 유쾌)



함박구름

크고 시원하게 웃으니 ‘함박웃음’이다. 크고 시원하게 피는 ‘함박꽃’을 닮은 웃음이라고 여긴다. ‘함박’은 ‘하·한’이 말밑이요, ‘하늘·크다·하나’를 밑뜻으로 담는다. ‘한바탕·함께·함함하다’도 말밑과 밑뜻이 같다. 이런 얼거리를 헤아리면, 크고 시원하게 내리는 ‘함박눈·함박비’에 ‘함박구름·함박물결’처럼 새말을 여밀 수 있다.


함박구름  (함박 + 구름) : 굵고 크게 피어난 구름.

함박 ㄴ (함지박) : 1. 속에 넉넉히·잔뜩·많이 담을 수 있도록 통나무를 둥그렇게 움푹 파서 쓰는 그릇. 2. 겉으로 드러나는 길이·넓이·높이·부피 같은 모습이 여느 것·다른 것보다 더 되거나 더 있거나 넘거나 넉넉히 남을 만하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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