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지방 : 마을이나 고을이나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마을·고을·시골’이라는 이름을 쓴다. 마을도 고을도 시골도 아닌 데, 그러니까 서울에서 사는 사람은 ‘지방’이라는 이름을 쓴다. 서울내기한테는 서울이 아니면 모두 ‘지방’이다. 서울곁 인천도 부천도 수원도 고양도 죄다 ‘지방’으로 여긴다. 이제는 여러 서울내기가 ‘서울 아닌 곳’을 ‘지방’으로 여기지 않는 눈길을 틔우기도 하지만, 웬만한 서울내기는 ‘서울과 지방’이라는 두 갈래로 바라본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서울로 올라와”라든지 “부산으로 내려가”라든지 “강릉으로 내려가”라든지 “문산으로 내려가”처럼 쓴다. 서울 바깥으로 가면 죄다 ‘내려가다’이다. 그런데 부산내기는 양산이나 포항을 보며 “양산으로 내려가다”나 “포항으로 내려가다”라 한다. 전남 광주는 순천을 보며 “순천으로 내려가다”라 하고, 순천시는 고흥군을 보며 “고흥으로 내려가다”라 한다. 전남 고흥 시골에서 고흥읍은 “도화면으로 내려가다”처럼 쓰고, 시골 면소재지에서는 “○○마을로 내려가다”처럼 쓴다. 서울내기는 서울이 꼭두라 여기며 몽땅 내려다보는데, 서울 아닌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모두 다른 고을을 내려다본다. 광역시는 시를 내려다보고, 시는 군을 내려다본다. 군에서 읍은 면을 내려다보고, 면은 마을을 내려다본다. 마지막으로 시골 맨끝 마을에서는 “이장님 댁에 올라가다”라 한다. 꼴사납지. 볼썽사납지. 창피하지. 부끄럽지. 그런데 이 ‘올라가다·내려가다’ 같은 바보말이나 멍청말을 바로잡는 이는 아주 드물다. 서울내기만 탓할 일이 아니란 뜻이다. 서울은 서울대로, 우리나라 모든 마을과 고을과 시골은 그곳대로 스스로 이웃을 따돌리거나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면서 바보짓이나 멍청짓을 잇는다. 언제쯤 ‘지방’이라는 구린말을 걷어낼까? 언제쯤 서울내기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 입에서 ‘올라가다·내려가다’ 같은 썩은말을 털어낼 수 있을까? 2015.11.2.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뻘짓을 하는 고흥군수 행정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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