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컴퓨터 2023.7.25.불.



너는 수저한테 일을 시키고, 밥솥이며 손전화한테 일을 시키지. 신이며 옷한테 일을 시키고, 싱싱칸(냉장고)한테 일을 시켜. 네가 시키는 모든 일은 스스로 할 만할 뿐 아니라, 여태 스스로 해온 일이지. 그러니 생각해 보렴. 너는 밥그릇이며 붓(연필)이며 비누이며 이불한테 일을 맡길 적에 온마음을 다할 노릇이고, 네 말(맡기는 마음·소리)을 듣고서 따를 모든 살림한테 고맙게 웃으면서 토닥일 줄 알 노릇이야. 셈틀(컴퓨터)도 네가 맡기는 일을 바지런히 하지. 네가 깃드는 집도 그래. 해를 알맞게 가리면서 햇볕이 스미고, 바람을 알맞게 가리면서 바람이 틈새로 스며. 비를 알맞게 가려 주고, 바깥먼지나 바깥소리도 가려 주는 집이야. 너는 신을 얼마나 자주 빨고 말려? 이불은 얼마나 자주 빨고 말리니? 셈틀은 얼마나 오래 쓰고서 쉬라 하니? 쓰고 쉬기를 알맞게 이을 적에 네 살림을 오래 곁에 두겠지. 그리고 어느 때에 이르면 놓아줄 일이야. 곰팡이를 머근은 밥을 내내 그냥 두지는 않지? 구멍난 옷을 기우거나 새로 장만해야겠지. 네가 몸에 걸치는 옷을 언제 빨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알아보고 살피듯, 셈틀도 모든 살림도, 너하고 함께 즐겁게 살아가며 일을 맡도록 차근차근 챙기고, 쉬어야 할 적에 푹 쉬도록 놓아주기를 바라. 네가 잠을 안 잔다고 하더라도, 나비도 나무도 잠을 자야 해. 쉬잖고 말을 한대서 이야기일 수 없잖아.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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