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경력단절 :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경력단절’이라 여기는 분이 무척 많은 줄 아는데, 아이를 돌보았대서 ‘경력단절’은 터럭만큼도 안 된다. 오롯이 아이하고 열 해나 스무 해를 살아낸 분을 보라. 미움이나 짜증이나 설움이 아닌, 오직 사랑이란 마음으로 아이하고 열 해에 스무 해에 서른 해에 마흔 해를 살아온 분을 보라. ‘아이돌봄’을 해온 분은, 아이 곁에서 살아온 나날이 늘면 늘수록 솜씨꾼(멀티플레이어·베테랑)으로 거듭난다. 한꺼번에 몇 가지 일쯤 우습지 않게 해내는 솜씨를 보라. 온갖 일을 도맡으면서 지치지 않는 어마어마한 기운을 보라. ‘독박육아·경력단절’이란 있을 수 없다. 아이 곁에서 살아가는 나날은 ‘어디에도 없는 새 경력을 놀랍게 이루어 빛나는 길’이다. 그동안 일구고 쌓아온 모든 살림살이를 아기한테 새롭게 맞추어서 어린이하고 함께 나아가는 어깨동무를 처음부터 다시 익힌 이분, 그러니까 ‘아줌마’는 어떤 일을 맡겨도 훌륭히 해낼 만하다. 그래서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회의원·시도지사군수·장관·부장·팀장·교육감 같은 일자리는 ‘선거 없이 아줌마한테 맡길 일’이라고 본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대통령을 맡아야 한다면, ‘여러 아이를 스무 해쯤 돌본 아줌마’가 어울린다. 여러 아이를 스무 해쯤 돌본 아줌마는 일을 어마어마하게 잘할 줄 아는데, 고르게 아름답게 깔끔하게 사랑스럽게 눈부시게 잘한다. 우리나라가 흔들리거나 망가지려 한다면, ‘아줌마 대통령’이나 ‘아줌마 국회의원’이나 ‘아줌마 시도지사’가 아닌 ‘얄딱구리한 정치모리배’가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쥔 탓이라고 여길 만하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온 돈·이름·힘이 없는 아저씨’는 집안일을 잘할 줄 안다. 집안일은 ‘군대를 다녀온 아저씨’한테 맡기자. 사납고 슬픈 사슬터(감옥)인 군대인데, 이 군대에서 스스로 살림하면서 살아남은 아저씨한테는 ‘오직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일구고 싶다’는 꿈이 싹트게 마련이다. 2010.10.14.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