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수다꽃, 내멋대로 50 고양이와 개
고양이를 가리키는 이름이 많다. 개를 가리키는 이름도 많다. 개는 열두띠에 들어가고, 고양이는 열두띠에 안 들어가는데, 열두띠에 들어가는 범은 ‘범 갈래’가 아닌 ‘고양이 갈래’이다. 이렇게 보면 고양이도 범하고 한동아리로 열두띠에 깃든다고 여길 만하다. 온누리에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하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이에는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온누리에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하고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이 틈바구니에는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고양이나 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가까이하지도 멀리하지도 않는다. 어릴 적부터 따로 가까이하고프거나 멀리하고픈 것이 드물었다. 그러나 몸에 안 받는 것은 많았다. 김치도 치즈도 소젖(우유)도 요거트도 찬국수(냉면)도 동치미도 시큼이(식초)도 하양이(크림)도 달콤이(케익)도, 몸에서 안 받아 몽땅 게워내기 일쑤였다. 혀짤배기에 말더듬이라서 못 읽거나 못 읊는 소리가 있고, 못 부르는 노래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내 몸에 안 받거나 내 몸이 못 받아주더라도 싫어하거나 멀리할 마음은 없다.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픈 사람들은 그들대로 즐기는 삶일 테니까. 곰곰이 보자면, ‘나로서는 몸에 안 받지만, 둘레에는 다들 몸에 잘 받는 살림이나 밥이나 옷’이 퍽 많기에, 어려서부터 ‘좋고 싫고’를 가를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함부로 ‘좋다 싫다’를 따져서는 안 된다고 느끼고 배웠다. 어려서부터 못 읽는 소리에 못 부르는 노래가 넘치다 보니 ‘말을 잘 못 하거나 글을 잘 못 쓰는 이웃’을 마주할 적에는 이웃님 마음속을 헤아리고 읽는 데에 스스로 더욱 기운을 들였구나 싶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숲노래 씨를 처음 볼 적에 팔뚝이나 허벅지에 힘살(근육)이 많아서 “어디서 운동하셨어요?” 하고 묻는데, 숲노래 씨는 집안일과 손빨래를 하고, 아이를 업고 안고서 돌보았으며, 지게처럼 책짐을 짊어지고 나르기를 1982년 어린이일 적부터 했다. 어린이로 살던 때부터 어머니하고 저잣마실을 함께 가서 두 손하고 등짐에 살림거리를 이고 지고 들면서 날랐고, 겨울에는 땔감도 언니하고 두 손으로 낑낑낑 나르면서 보냈다. 그저 손으로 일하고, 발로 걷고, 등으로 지고, 몸으로 맞아들여서 하노라니, 힘살이 저절로 팔다리에 붙을 뿐이다. 덧붙인다면, 쇳덩이(자동차)를 안 몰기에 두바퀴(자전거)를 몬다. 언제나 신나게 두바퀴를 달리기에 힘살이 또 붙을 수 있다. 이러저러하다 보니, 누가 이쪽을 좋아하든 저쪽을 좋아하든 언제나 시큰둥하게 사이에 서서 지켜보았다. 누가 저쪽으로 몰리든 이쪽으로 쏠리든 늘 심드렁하게 가운데에 서서 어느 길에도 끼지 않았다. 스스로 어느 하나를 좋아하려 한다면, ‘나를 뺀 숱한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안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어느 하나를 싫어하려 한다면, ‘나를 뺀 숱한 사람들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안 싫어할 수 있다’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중용·중도’라는 어려운 한자말을 쓰지 말자. 그저 ‘가운데·복판·사이’라는 쉬운 우리말을 쓰면서 생각하자. ‘가슴 = 가운 몸씨’이다. 우리 가슴이란 ‘가운데에 있는 씨앗을 이루는 몸’이다. ‘가슴 = 마음’이다. ‘복판 = 봄을 이루는 즐거운 수다판’이다. ‘사이 = 새’이다. 이쪽이나 저쪽으로 쏠리면서 뭘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물결이 되면, 누구나 어느새 ‘가슴·마음’을 등지고 ‘복판·봄·보다’를 등돌리고 ‘사이·새로움·멧새노래’를 잊어버리더라. 숲노래 씨는 책을 허벌나게 읽지만, ‘좋아하는 책이나 글님’이 아예 없다. 숲노래 씨는 어느 책을 읽든 ‘살펴보고 지켜보고서 배우는 책이나 글님’이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안 좋아하고 안 싫어한다. 다만, ‘사랑하는 책이나 글님’은 있다. 하려면 사랑을 할 일이요, 하려면 살림을 할 일이며, 하려면 노래를 하고 놀이를 하면서 별빛잔치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다룬 만화책이나 개를 담은 사진책을 으레 장만하지만, 고양이도 개도 안 좋아하고 안 싫어한다. 이웃 숨결을 포근히 담아내는구나 싶으면 장만해서 읽을 뿐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