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수우당 시인선 10
표성배 지음 / 수우당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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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9.30.

노래책시렁 339


《당신은 누구십니까》

 표성배

 수우당

 2023.4.25.



  우리는 참말로 뭘 모르는 채 살아갑니다. 뭘 몰라서 나쁘지 않아요. 모르면 지켜보고 들여다보고 바라보면서 처음부터 배우면 됩니다. 모르면서 모르는 줄 모르는 채 멀뚱멀뚱 구경만 하거나 팔짱만 끼거나 등을 돌리면 철없는 굴레에 스스로 갇혀요. “모르는 줄 알다”란, ‘첫앎’입니다. 무엇을 모르는 줄부터 알아야 무엇을 배우면서 새롭게 나아갈 줄 알아보면서 스스로 길을 열고 턱을 치우고 틈을 냅니다.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짝꿍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까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어떻게 놀고 어떻게 노래해야 할까요? 잘 모르겠다면, 먼저 마음에 생각씨앗 한 톨부터 심어요. “난 여태까지 모르는 채 살았어! 난 이제부터 하나씩 배우겠어!” 《당신은 누구십니까》는 그대가 누구이냐 묻는 듯하지만, 곰곰이 보면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줄거리입니다. 나를 나로서 내가 바라보려니, 나부터 눈을 떠야겠다고 여기면서, 바로 나다운 내 눈망울을 헤아리려고 첫발을 뗄 자리를 어림합니다. 모름지기 누구나 스스로 ‘나사랑’을 하기에 ‘너사랑’으로 이으면서 ‘우리사랑’을 함께 봅니다. ‘나너우리’처럼 말하는 밑뜻이 있어요. 날개를 펴야 너머로 갑니다.


ㅅㄴㄹ


월마트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대형 할인점 간판을 떠올리다 (나는 작아진다) 오렌지마트 빅세일마트 동남마트 한들마트 상설할인점 앞을 지나 나는 점점 작아진다 동네 슈퍼마켓에 들러 라면과 소주 한 병 딸아이가 좋아하는 쫄쫄이와 쫀디기를 사고는 나는 점점점 작아진다 그래도 오늘은 월급날 휘이― 휘이― 휘파람을 불어요 (휘이―휘파람을 불어요/19쪽)


사실, 정말, 무책임하게도 애들이 어떻게 컸는지 몰라요. 눈 뜨는 공장이고, 눈 감아도 공장이고 (그럼, 공장이 애들을 키우고― 키웠네― 키웠어) 사실입니다 사실이에요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니까요 (정말이에요) 그래서 아내에게 더 미안하죠 (애들이 어찌 자랐는지 몰라요/37쪽)



《당신은 누구십니까》(표성배, 수우당, 2023)


화사하게 피었다 처절하게 죽는다

→ 눈부시게 피었다 눈물나게 죽는다

→ 곱게 피었다 모질게 죽는다

13쪽


오늘 해고되지 않았다면 내일 해고될지 모른다

→ 오늘 밀리지 않았다면 이튿날 밀릴지 모른다

→ 오늘 잘리지 않았다면 이듬날 잘릴지 모른다

18쪽


굉음과 굉음 불꽃과

→ 듣그런 불꽃과

→ 시끄러운 불꽃과

→ 큰소리와 큰불꽃과

21쪽


지난봄 상판床板 난간에서 용접하다 떨어져 죽은

→ 지난봄 밑판 울타리에서 붙이다 떨어져 죽은

→ 지난봄 받침 울대에서 이어붙이다 떨어져 죽은

23쪽


안전사고 따위는 짧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 작은일 따위는 짧은 얘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26쪽


관 속에서 망치 소리가 난다

→ 널에서 망치 소리가 난다

28쪽


일 년짜리 계약서에 서명한 날

→ 한 해짜리 다짐글에 이름쓴 날

31쪽


멈추는 순간 파산破産인 자본

→ 멈추면 깨지는 돈주머니

→ 멈추면 박살나는 돈

41쪽


백합 같은 누이들 혹은

→ 나이 같은 누이나

46쪽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 어떤 말로도 풀이하지 못 하는

→ 어떻게도 풀어내지 못 하는

58쪽


별을 찾는 사람을 희귀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 별을 찾는 사람을 드물다고 여긴다

→ 별을 찾는 사람을 값나간다고 본다

66쪽


벽이라는 벽은 모조리 점령하고 싶다

→ 담이라는 담은 모조리 차지하고 싶다

7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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