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토막토막 (2023.8.18.)

― 인천 〈나비날다〉



  고흥에서 끝내지 못 한 마감글을 붙잡고 시외버스를 달려 서울에 닿고는, 이수나루 언저리 〈알라딘 중고샵〉에 가서 자리 하나를 맡았습니다. 겨우 마감글을 보내고서 숨을 돌렸고, 인천으로 달리는 칙폭길에 노래꽃을 천천히 씁니다. 오늘은 송현동 골목을 따라 걸어서 배다리로 닿습니다. 먼저 〈나비날다〉부터 찾아가는데, 젊은이가 꽤 많습니다. ‘이분들은 다 책손님인가? 오늘은 붐비네?’ 하고 여겼지만, 책손님이 아닌 ‘15분 연극’을 하러 온 멋님(배우)이로군요.


  토막판(단막극)을 하는 분들은 책집에서 판놀이를 벌여도 책을 들여다보는 일이 드물 수 있습니다. 책집에서 뭘 찍는 분들치고, 책집에 느긋이 깃드는 발걸음을 거의 못 보았습니다. 노래그림(뮤직비디오)을 찍는 분들은 책시렁을 이리저리 바꾼다거나 책도 이래저래 바꿔치기를 해놓기 일쑤이더군요.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바람이 불거나 구름이 흐르거나 해가 나거나 별이 돋는 날씨를 고스란히 살려서 노래그림을 찍는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일을 하는 사람도 없다시피 하는 오늘날이에요. 딱히 누구를 나무랄 일은 없습니다.


  이원수 님이 남긴 노래(동시) 가운데 ‘씨감자’를 읽으면 “토막토막 자른 자리 재를 묻혀 심는다”란 대목이 있어요. 토막판을 여는 젊은이는 씨감자를 알까요? 씨감자를 어떻게 묻는지 알까요?


  우리는 무엇이든 다 알아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누구나 무엇이든 다 알아보고 알아차리고 알아갈 수 있어요. 마음을 틔우고 눈을 뜨는 사람이라면, 온누리 모든 수수께끼를 스스로 풀게 마련입니다. 생각해 봐요. 그리 멀잖은 옛날에는 온누리 누구나 손수 집밥옷을 짓고 나누었어요. 따로 책이나 배움터가 없더라도, 지난날 수수한 사람들은 사랑으로 짝을 맺어 아이를 낳아 오롯이 사랑으로 품고 돌보면서 말까지 알뜰살뜰 물려주었습니다.


  배다리 〈나비날다〉에서 큰판을 벌이든 작은판을 꾀하든, ‘나비’가 왜 나비인지를 알아보는 분이 늘기를 바라요. ‘날다’가 왜 날다라는 투박한 우리말인지 알아차리는 이웃이 늘기를 바라요. 냥이는 왜 나비를 그렇게 반기고 같이 놀면서 바람빛을 파랗게 머금으면서 사뿐사뿐 거닐 수 있을까요? 열두띠에 ‘고양이띠’는 없되 ‘범띠’는 있습니다. 범무늬를 담은 ‘범나비’가 있어요. 한마음 한뜻으로 사귈 줄 알 적에 ‘벗’입니다. 물가에서 살랑살랑 춤추며 푸르게 물드는 버드나무가 차츰 사라지고 버들피리를 불 줄 아는 어린이도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책집에서는 책을 보고 읽고 느끼고 나누는 토막판을 토닥토닥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호리코시 요시하루/노수경 옮김, 김영사, 2023.8.4.)

《고양이를 찍다》(이와고 미츠아키/박제이 옮김, 야옹서가, 2019.8.26.)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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