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완전무장지대 : ‘비무장지대’란 헛소리이다. 거짓말이다. 터무니없다. 이름은 ‘비무장지대’라지만 남녘도 북녘도 꽝꽝꽝·펑펑펑(미사일·폭탄·지뢰·전차) 그득그득하다. 허울만 ‘비무장지대’이다. 그런데 이곳 ‘비무장지대’에 깃들기 앞서까지는 어떤 터전인지 참으로 몰랐다. 둘레에서 ‘비무장지대’라 말하니 그러려니 여겼다. ‘비무장지대’에서 보낸 스물여섯 달(1995.11.∼1997.12.)은 ‘삶눈(삶을 보는 눈)’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우리가 다같이 속는 허울말에 치레말에 겉말을 날마다 보고 느꼈다. ‘각티슈 상자’에 투표용지를 넣어서 모으는 ‘1997년 대통령선거’를 싸움터(군대)에서 치르면서 ‘부정선거’란 이런 짓을 가리키는구나 하고 느꼈다. 사단장이 짚차를 타고 지나간대서 한 달 동안 멧길을 반반하게 다지는 ‘도로보수 공사’를 했고, 또 ‘사단장 선물’로 줘야 한다면서 모든 중대원이 멧숲을 뒤져서 ‘곰취작전’을 해야 했다. ‘곰취작전’이란, 사단장이란 놈한테 ‘곰취’를 열 자루 채워서 주어야 하는 일이다. 21사단에 있던 나는 ‘베트남전쟁에서 쓰던 소총에 박격포’를 그대로 물려받아서 썼다. ‘사단 연합 훈련’을 하며 만난 27사단 또래들은 ‘한국전쟁에서 쓰던 박격포’를 쓰더라. 그나마 내가 있던 21사단 박격포는 ‘두어 벌 재면 한 벌은 쏠 수 있’었는데, 27사단 박격포는 ‘아예 쏠 수 없는 헌쇠(고물)’를 그냥 들고 다니더라. 곰곰이 보면, 북녘도 크게 안 다르리라 느낀다. 우리가 쓰던 ‘K2 소총’은 베트남전쟁에서 쓰던 낡은 쇠붙이라서 열 벌이나 스무 벌을 못 쏘기 일쑤였다. 날마다 그렇게 기름을 먹이고 닦고 조여도 서너 벌을 쏘면 걸리거나 먹힌다. 한 벌조차 못 쏘는 총이 수두룩했다. 우리는 뭘 했을까? 쏠 수도 없는 총에 박격포에 기관총에 무반동총을 힘겹게 짊어지면서 멧골을 넘고 눈길을 타고 들길에서 뒹굴면서 뭘 한 셈일까. 북녘 젊은이도 비슷하리라. 숱한 젊은이는 무늬만 ‘군인’으로 젊은 나날을 흘려보내면서 ‘나라가 시키니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종살이’를 하는 셈이다. 이런 데가 ‘비무장지대’이다. 그러고 보면, ‘겉으로는 잔뜩 쥔 총칼’이지만, ‘막상 쏠 수도 없는 헌쇠붙이’인 꼴이니, ‘완전무장지대인 척하는 비무장지대’가 맞을는지 모른다. 1998.1.6.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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