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날마다 그림과 (2023.8.19.)

― 서울 〈악어책방〉



  숲노래 씨는 여러 가지를 알거나 모릅니다. 아는 길은 알되, 모르는 길은 모릅니다. 1982∼87년에 다닌 어린배움터(국민학교)가 얼마나 어린이를 짓밟고 때리고 괴롭히고 돈을 빼앗고 막말을 일삼는 죽음터였는지 낱낱이 압니다.


  숲노래 씨는 2008년하고 2011년에 낳은 두 아이를 배움터에 안 보냈습니다. 아니, 숲노래 씨랑 함께 살아가는 두 아이는 스스로 ‘집에서 배우겠다’고 밝혔고, 스스럼없이 아이들 뜻을 따라, 넷이서 시골살림을 가꾸는 하루를 누립니다. 그래서 숲노래 씨는 ‘집배움’을 조금 압니다. 그렇지만 2014∼2023년에 어린배움터(초등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요즈음 어린이가 무엇을 듣고 느끼고 받아들이는지 모릅니다.


  서울 〈악어책방〉에서 서울 어린이 여럿하고 ‘노래꽃수다(시창작수업)’를 여러 달째 하는데, 오늘 새삼스레 하나를 느낍니다. 이 아이들은 집이나 배움터에서 ‘그리고픈 그림’을 느긋하거나 마음껏 손을 놀려서 그릴 틈이 없군요. 예전 어린이는 만화책을 옆에 놓고서 흉내그림을 했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는 손전화를 켜서 흉내그림을 합니다. 아스라한 옛날 어린이는 하늘을 보고 풀꽃나무랑 들숲바다를 보면서 나뭇가지를 슥슥 흙바닥에 놀리면서 그림소꿉을 누렸습니다.


  어린이는 ‘학교에 다니려’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는 ‘사랑받’으려고 태어났으며, 느긋하게 하루를 통째로 뛰놀면서 노래하려고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이 나라 어린이는 하루 가운데 쪽틈조차 마음껏 뛰지도 놀지도 그림을 그리지도 말을 할 수 있지도 않습니다.


  집에서는 어버이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야 하고, 배움터에서는 어른이 이끄는 대로 좇으면서 달달 외워야 하는 어린이입니다. 스스로 보고 느끼고 배우는 하루가 없다면, 이 어린이는 ‘다 다른 숨결을 입고서 자라나는 하루’가 맞을까요?


  다 다른 어린이가 막상 ‘다 같은 굴레’에 갇히는 틀에서 허덕이면서 ‘똑같이 외우고 따라해야’ 하면, 이 아이는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어른은 ‘남하고 똑같이 나이를 먹으며 늙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른은 ‘나다운 빛을 어질게 밝히면서 철을 읽고 알아 나누는 상냥한 사람’입니다.


  서울 어린이가 스스로 붓을 쥐고서 글을 적어 보도록 얘기하다가, 이 아이들이 그냥 입으로 터뜨리는 속내를 옆에서 옮겨적다가, 이 아이들로서 ‘노래쓰기(시쓰기)’란, 그저 ‘빠듯한 두 시간’을 신나게 그림놀이를 즐기도록 하면서, ‘놀고픈 마음’을 읽는 길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ㅅㄴㄹ


《날마다 미친년》(김지영, 노란별빛책방, 2023.3.12.)

《여자, 사람, 자동차》(고선영·김지선·나리·소서·하영·해영, 새벽감성, 2021.12.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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