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빨리 쓰려고 달리면 (2022.10.12.)
― 진주 〈동훈서점〉
전북 정읍 마을책집에 들르려고 광주로 건너갔고, 다시 광주로 와서 경남 진주로 시외버스를 달립니다. 숲노래 씨는 길에서 노래(시)를 씁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버스에서 내려 걷거나 다른 탈거리로 옮기는 길에, 으레 붓을 쥐고 슥슥 이야기를 여밉니다.
더위가 가시면서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찾아올 테지요. 겨울이 지나면 다시 움트고 싹트는 봄이 올 테고요. 철은 돌고돕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속빛을 틔울 줄 안다면, 언제나 새롭게 흐르는 철을 알아보면서 생각을 살찌우게 마련입니다.
시외버스에서 드디어 다 내리고서 골목길을 걷습니다. 이제 진주책집 〈동훈서점〉에 이릅니다. 저녁빛을 머금으면서 수다꽃을 피웁니다. 책 한 자락을 사이에 놓은 사람들은 ‘읽는 끈’으로 만납니다. 얼굴을 마주볼 적에도 마음을 읽고, 글씨만 빼곡한 종이꾸러미를 쥘 적에도 마음을 읽습니다.
글이란, 삶을 옮기면 매우 쉽니다. 문학이건 과학이건 철학이건 어떤 이름을 붙이는 글이건 어려울 까닭이 없습니다. 느낌글도 매한가지예요. 책이나 영화를 읽고서 쓰는 느낌글은, ‘몇 벌쯤 되읽고 나서 쓰느냐’에 따라서 깊이랑 너비가 다릅니다. 책느낌글을 쓸 적에 10벌쯤 되읽는가요? 영화느낌글을 쓸 적에 100벌쯤 되읽는지요?
책 한 자락을 애벌로 읽고서 느낌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가만히 누릅니다. 석벌쯤 되읽었어도 며칠이나 이레쯤 누릅니다. 어느 책은 좀 서둘러 느낌글을 써야 하기에 이럭저럭 익히고서 여민다면, 웬만한 책은 달포나 한두 해쯤 가볍게 삭이고서 여밉니다. 그래서 영화느낌글 하나를 써내기까지 100벌 남짓 되읽는 터라, “자, 이제 써야지.” 하고 마음을 먹으면 느낌글이 물처럼 줄줄줄 흘러요.
집을 빨리 지으려고 서두르면 어찌 될까요? 서둘러 올린 집에서는 몇 해쯤 지낼 만할까요? 서둘러 쓴 책은 몇 벌쯤 되읽을 만할까요? 서둘러 쓴 글은 몇 벌쯤 되읽을 빛씨앗이 감돌까요?
요즈막 적잖은 책은 ‘되읽기’ 너무 어렵습니다. 둘레에서는 날개 돋힌듯 팔린다고 여기는 책이라지만, 그저 잘난책(베스트셀러)은 알맹이가 없어요. 애써 두어 벌 되읽어도 빈수레만 시끄러운 민낯을 더 낱낱이 느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많이 보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아이들하고 100벌이든 1000벌이든 다시 누릴 영화’를 찾아나설 적에, 우리 눈빛부터 바뀌고 이 나라가 통째로 바뀝니다. 더 많이 안 읽어도 됩니다. 아름책을 읽고, 숲책을 펴고, 사랑책을 쓰면 됩니다.
ㅅㄴㄹ
《한검바른길 첫거름》(정렬모 엮음, 대종교총본사, 1949.5.1.)
《수수께끼별곡》(서정범, 범조사, 1986.3.10.첫/1991.10.15.23벌)
《나나NANA 38∼66호》(전영호 엮음, 예원문화사, 1995∼199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