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꽃 / 숲노래 우리말 2023.8.4.

나는 말꽃이다 146 피다



  살아서 움직이도록 하는 ‘피’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결을 나타내는 ‘피다’입니다. 꽃이 피고, 불을 피려 하고, 얼굴이 피고, 웃음이 피고, 살림을 피고, 옷에 보풀이 피고, 곰팡이가 피고, 냄새가 피고, 글씨가 핍니다. 우리말은 ㅍ하고 ㅂ이 맞물리니 ‘피’를 살피면 ‘비’를 함께 살핍니다. 몸을 살리는 피처럼, 들숲바다를 살리는 비입니다. 몸을 씻고 돌보는 피처럼, 들숲바다랑 뭇숨결을 씻고 아끼는 비입니다. ‘피 + 다’ 사이에 깃드는 말씨에 따라 가볍게 달리 쓰는 대목이 있되, ‘피우다·피어나다·피어오르다’ 모두 ‘피다’를 바탕으로 뻗은 말씨이기에 “살아서 움직이거나 흐르는 결”을 담아냅니다. ‘비 + 다’ 사이에 깃드는 말은 어떨까요? 텅텅 비었기에 모자라거나 없다고 여기지만, 넉넉히 비웠기에 새롭게 채우거나 배운다고 느낍니다. 텅텅 빈 마음이나 삶은 ‘빚·빚더미’로 간다면, 새롭게 채우거나 배우는 살림은 ‘빛·빛나다’로 갑니다. 때로는 빗나가지만, 때때로 비슷비슷합니다. 이따금 핀잔에 핑계로 기울지만, 새삼스레 살핏살핏 웃고 빙긋빙긋 즐거이 하루를 가꿉니다. 모든 말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저 모든 삶을 다 다르게 담아서 나타냅니다. ‘좋은말·나쁜말’이 아닌 ‘말에 담은 삶’을 봐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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