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시란? (2023.5.27.)
― 서울 〈악어책방〉
비가 신나게 들이붓는 날에 서울마실을 합니다. 서울로 가는 버스도, 고흥으로 돌아오는 버스도, 어쩐지 찾거나 잡기 어렵습니다. 광주나 순천을 도는 버스는 이따금 빈자리가 있습니다. 하루치기로 서울길을 다녀오자고 여기면서 시외버스에서 졸며 자며 글 몇 자락을 씁니다. 오늘 낮에 만날 서울 어린이한테 건네주고 들려줄 노래를 건사하면서 구름송이를 보고, 비내음을 맡습니다.
어버이로서 별빛을 품고 그릴 적에 우리 아이들한테 별노래를 들려줍니다. 어른으로서 잎빛을 보고 품을 적에 이웃 아이들한테 숲노래를 속삭입니다.
쇳덩이(자동차)를 모는 하루가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만, ‘오늘 스스로 꿈으로 그리면서 누릴 사랑’부터 헤아리고서 마음에 담지 않은 채 손잡이부터 쥐면, 우리 마음에는 쇳소리에 쇳밥이 스며요. 돈을 버는 일감이 나쁘지 않습니다만, ‘오늘 스스로 푸르게 나누며 길어올릴 사랑’부터 생각하고서 마음에 얹은 채 돈부터 벌면, 우리 마음에는 땟국에 티끌이 쌓여요.
시골에서 논밭을 지으면서 풀죽임물(농약)을 쓸 수도 있습니다만, 오롯이 푸른사랑을 품으면서 풀죽음물을 치는 이웃님은 아직 못 만났습니다. 저놈은 저놈이라서 밉다고 여기면, 저놈 탓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에 스스로 미움씨를 심었기에 스스로 불길이 화르르 일어나요.
새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꾸는 하루라면, 언제나 즐겁게 빛납니다. 작은새도 큰새도 우리한테 하늘노래랑 땅노래랑 나무노래를 들려주거든요. 풀벌레를 손바닥에 얹고서 소근소근 수다를 떠는 마음을 돌보는 하루라면, 늘 싱그럽고 밝아요. 애벌레도 딱정벌레도 잎벌레도 사슴벌레도 우리하고 똑같이 숨붙이입니다.
우리는 딴짓도 하고,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헤매기도 하기에, 이 삶이 하루하루 새롭고 즐거울 만하지 싶습니다. 딴짓은 안 나빠요. 헤매는 길도 안 나빠요. 아름책만 읽을 까닭이 없어요. 좀 엉터리인 사람이 벼슬을 쥐고서 허튼짓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마음자리에 한결같이 푸르고 파랗게 어우러지는 사랑을 그리면서 보금자리를 노래할 만합니다.
‘시를 쓰기에 시인’이 아닙니다. ‘시인이기에 시를 쓰지’ 않습니다. ‘시·시인·문학·예술’은 모두 껍데기예요. 허울입니다. 겉치레를 털고 허물을 벗어던질 때라야 삶을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짓는 살림길에 새롭게 한 발을 디디고서 노래합니다. 이 노래란, 말 한 마디입니다. 말 한 마디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란, 오늘빛이 이슬로 물들면서 스미는 꽃내음입니다.
ㅅㄴㄹ
《사과꽃》(김정배 글·김휘녕 그림, 공출판사, 2023.3.31.)
《태양왕 수바, 수박의 전설》(이지은, 웅진주니어, 2023.5.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