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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수영장 (어나더커버 특별판) ㅣ 수박 수영장
안녕달 글.그림 / 창비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3.8.4.
그림책시렁 1269
《수박 수영장》
안녕달
창비
2015.7.27.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고, 겨울은 추워야 제멋입니다. 봄은 따뜻하기에 제철이고, 가을은 넓고 깊어서 제빛이에요. 철마다 다르기에 여름에는 땀을 흠뻑 쏟으면서 우리 몸이 새롭게 피어납니다. 옛사람은 아이한테 어질게 철을 물려주고 나누었기에 어버이라는 자리에 섰어요. 철마다 철빛을 누리면서 철사람(철든 사람)으로 살자면, 보금자리는 풀꽃나무로 넘실거리는 숲집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나라를 보면, 서울도 시골도 풀꽃과 나무를 미워하고 풀벌레를 꺼리고 새를 쫓아내요. 끝없이 풀죽임물을 뿌리고 비닐을 씌울 뿐 아니라 똑똑짓기(스마트팜)라고 내세워 해바람비가 없는 ‘죽음밭’까지 목돈 들여 때려세웁니다. 《수박 수영장》은 ‘30만 부 기념 어나더커버’가 나왔다는군요. ‘어나더커버’는 어느 나라 말인가요? 어린이랑 함께 누리는 그림책에 이런 뜬금말을 왜 쓸까요? ‘새그림·새얼굴’에 ‘다른그림·다른얼굴’이 있습니다. ‘새날개·다른나래’ 같은 이름을 붙여도 되겠지요. 그나저나, 30만 자락을 파는 동안 《수박 수영장》은 고침판을 안 내는군요. 시골 할배는 손에 뭘 쥐었을까요? ‘낫’일까요, ‘낫 흉내 손칼’일까요? ‘조선낫’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수 있겠지요. 그러면 논자락은 어떻게 생겼나요? 새마을바람 탓에 온나라 논이 ‘네모반듯’하게 바뀌긴 했습니다만, 논둑길하고 ‘버스길’이 어떻게 다른 줄 모르는 채 함부로 그려도 되지 않습니다. ‘서울 아닌 시골’을, ‘멧자락이 품은 논밭이 있는 시골’을 담아낸 그림일 텐데, 이 그림책은 시골아이한테는 안 보여줄 셈인가요? ‘시골로 놀러가기만 하는 서울아이’한테만 이쁘장하게 보여주려는 뜻인가요? 책날개에 새로 담듯, 큰칼로 수박을 가를 적에 ‘칼을 넣지 않을’ 텐데요? 그렇게 칼을 넣다가는 칼이 수박 사이에서 동강납니다. 수박을 가르는 ‘칼넣기·칼쥠새’는 다릅니다. 이런 허술하고 아리송한 그림도 얄궂습니다만, ‘아기 업은 어머니’ 그림이 더없이 어이없습니다. 그림님은 아기를 업은 적이 없는지요? 아기를 업은 어버이를 본 적이 없는가요? 요새는 다들 수레를 끄니까, 아기 업은 모습은 사진으로만 구경하고서 그렸는지요? 아기는 머리가 가슴 뒤쪽 등판에 닿도록 업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못 업어요. 아기가 곯아떨어져서 머리가 사르르 처질 수는 있습니다만, 어버이는 으레 아기 머리를 어버이 머리에 닿도록 추스릅니다. 처음부터, 아기 머리는 어버이 머리에 닿도록 업습니다. 아기 팔이 밖으로 안 나오도록 동이긴 합니다만, 아기가 팔을 내놓을 적에 어버이 어깨랑 목을 감싸거나 뺨을 만질 만한 눈높이를 이룹니다. 포대기이든 처네이든, 앞가슴으로 받쳐서 동여매는 터라, 가슴을 덮습니다. 가슴 밑으로 포대기나 처네를 감싸면 주르르 흘러내려요. ‘아기업기’를 ‘배’에다가 동여매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기 몸무게 때문에라도 그렇게 못 합니다만, 그림님뿐 아니라 엮은이도 이 엉터리 그림을 왜 안 고쳤을까요? 30만 자락을 파는 동안에 ‘틀린그림찾기’를 왜 안 할까요? 더구나, 이불이나 옷가지를 널려고 나무에 빨랫줄을 매는데, 마치 ‘아파트 빨래봉’처럼 ‘빨랫줄이 뻣뻣’하군요. 터무니없습니다. 마른이불이건 젖은이불이건, 나무에 맨 빨랫줄에 널면, 줄은 가운데가 푹 처집니다. 그래서 빨랫줄이 안 처지도록 바지랑대를 댑니다. 바지랑대를 대어도 줄은 우묵하게 들어갑니다. 이밖에 다른 그림도 엉성합니다만, 더 따지거나 말하거나 짚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창피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어린이하고 여름을 땀흘려 누리는 즐거운 한때를 수박과 저녁바람과 물놀이로 흐드러지게 펴는 줄거리를 담는 붓끝이, 부디 ‘삶·살림’을 어질게 돌보고 다룰 줄 알면서, ‘시골빛을 시골답게 품는 숨결’로 피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