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에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204
임후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노래책 / 시읽기. 문학비평 2023.8.2.

노래책시렁 354


《그런 의미에서》

 임후성

 문학과지성사

 1997.7.15.



  등으로 짐을 묵직하게 나르다가 곧잘 삐끗했습니다. 스무 살 적에도 서른 살 적에도 마흔 살 적에도, 또 쉰 살 적에도 매한가지입니다. 등짐이 무거워서 삐끗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찬찬히 기울이지 않았거나 문득 딴청을 하다가 삐끗합니다. 큰아이랑 함께 부엌에서 밥을 짓다가 아차 하면서 삐끗하는 날도 있습니다. 느긋이 움직이면서 밥을 지으면 될 노릇인데, 살짝이라도 서두르거나 바삐 움직이다가 삐끗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를 가만히 읽었습니다. 노래님은 1997년에 이런 꾸러미를 선보였군요. 1997년 7월은 참으로 더웠습니다. 저는 그즈음 강원 양구 멧골짝에서 50킬로그램에 가까운 등짐을 이고서 땀을 빼었고, ‘여름길(혹서기훈련·유격훈련)’을 한창 받는데, 우리 싸움터(군부대) 길잡이(중대장)는 길그림을 엉뚱하게 읽고서 한참 이 골 저 기슭을 잘못 넘으며 헤맸습니다. 그런데 이 길잡이는 애먼 우리들(일반 사병)한테 덤터기를 씌우더군요. ‘생명수당(격오지수당)’까지 더해도 병장이 고작 5만 원조차 안 되는 돈을 받고 구르던 그곳에서 “이 미친나라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살아남을까?” 하고 한숨을 지었습니다. 글꽃(문학)은 어디에서 뭘 하는가요? 누가 쓰고 누가 읽는 글일까요?


ㅅㄴㄹ


심야의 카페에서 한물간 화장 짙은 / 얼핏 귀여운 데가 남은 여가수가 / 노래부른다 사람이 기다려도 / 삼개월은 오지 않는다 손님 중에 / 누구 계십니까 전화가 울리고 / 지금은 갈 수 없어 /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어요 (사생활/93쪽)


그런 의미에서, 닥치는 대로 산다는 게 패악은 아니다 / 널 위해주고 싶다. 엉덩이를 쳐들고 / 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하고 싶다는 막무가내의 / 까탈을 들어주게 되기를 // 하자는 대로 다 해줄게 / 더 있다 가 (그런 의미에서/114쪽)


+


《그런 의미에서》(임후성, 문학과지성사, 1997)


뾰족한 잎들 위에서 풍성하게 엉덩이 걸쳐 타오르는 燐光

→ 뾰족한 잎에 푸짐하게 엉덩이 걸쳐 타오르는 빛

→ 뾰족한 잎에 푸지게 엉덩이 걸쳐 타오르는 빛살

12쪽


오랜 퇴적층 같은 아랫도리는 쓸모 없어지고

→ 오랜 켜 같은 아랫도리는 쓸모없고

15쪽


견지해라 네가 맞다

→ 버텨라 네가 맞다

→ 밀어라 네가 맞다

→ 나아가라 네가 맞다

17쪽


아침의 준족이 날렵하게

→ 아침 다리가 날렵하게

→ 아침에 날렵하게

20쪽


일어나기 일보 직전까지 저걸 가만히 내버려둬야 한다

→ 일어나기 앞서까지 저대로 둬야 한다

→ 눈앞에서 일어나기까지 저대로 둬야 한다

→ 코앞에서 일어나기까지 가만히 둬야 한다

20쪽


가끔씩 한쪽 다리의 힘을 옮기며

→ 가끔 한쪽 다리 힘을 옮기며

68쪽


꼬리의 구름, 그런 환대는 걷는다는 것

→ 꼬리구름, 그렇게 반기는 걷는 길

→ 꼬리구름, 그리 반기는 걷는 하루

80쪽


제시간에 맞춰 부모 형제에게 돌아갈 것이다

→ 제때에 집에 돌아간다

→ 제때에 집으로 돌아간다

84쪽


대합실에서, 축 허물어져서

→ 맞이칸에서, 축 허물어져서

91쪽


하룻밤 투숙을 하고

→ 하룻밤 묵고

→ 하룻밤 머물고

105쪽


그런 의미에서, 닥치는 대로 산다는 게 패악은 아니다

→ 그런 뜻에서, 닥치는 대로 산대서 고약하진 않다

→ 그러니까, 닥치는 대로 살더라도 나쁘진 않다

11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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