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7.22.

수다꽃, 내멋대로 47 다시, 돈



  살아가는 길에 꼭 있어야 한다면, ‘바람·해·비·숲’이 첫째라고 느낀다. ‘바람·해·비·숲’을 품고서 ‘별·새·메·바다’를 어우르는 하루라면, 언제나 스스로 빛나는 사랑으로 하루를 이루는구나 싶다. 이제 우리는 마을·고을·나라를 이루면서 높거나 커다란 집에 깃들어서 지내는 삶으로 바뀌는 사이에, ‘돈’을 쥐지 않으면 목숨을 잇기 어려운 흐름에 접어들었다. 곰곰이 보면, 사람들은 더없이 오래도록 돈 하나 없이 오직 살림살이로 오순도순 살았다. 누구나 돈없이 사랑으로 도란도란 지내었는데, 나라(정부)가 서고 우두머리에 벼슬아치에 먹물꾼이 늘면서 돈이 꼭 있어야 하는 얼거리로 뒤틀었다고 여길 만하다. 이런 얼거리를 똑똑히 읽거나 느끼기에, 또는 똑똑히는 아니어도 어렴풋이 읽거나 느끼기에, ‘돈 없이 목숨을 못 이을 듯한 나라’에서 ‘돈을 첫째로 삼아야 할 까닭이 없’는 줄 헤아리는 사람들이 ‘책’이라고 하는 종이꾸러미에 ‘마음·품·겨를·돈’을 옴팡지게 들여서 즐겁고 조촐하고 조그맣게 어깨동무를 한다고 느낀다. 돈을 벌거나, 이름을 얻거나, 힘을 쥐려는 속내로 책집을 차린 분도 곳곳에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돈바라기·이름바라기·힘바라기에 사로잡힌 몇몇 책집지기를 뺀, 훨씬 많은 책집지기는 ‘살림·사랑·숲’이라는 세 가지를 바라보고 품으면서, 서울(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바람·해·비·숲’을 고즈넉이 품고 나누는 길을 찾고 나누려는 마음을 꿈으로 그린다고 느낀다. 온누리는 더 많은 책으로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지 않다고 느낀다. 나부터 책을 허벌나게 읽기는 하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은 덜 읽거나 안 읽어도 얼마든지 훌륭하다’고 느낄 뿐 아니라, ‘종이꾸러미 책’을 넘어서 ‘바람이라는 책, 숲이라는 책, 하늘이라는 책, 바다라는 책, 풀꽃나무라는 책, 사랑 사이를 잇는 사랑이라는 책’처럼, ‘종이라는 덩이(물질)가 없어도 더없이 빛나는 책’이 둘레에 가득하다고 배운다.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이, 문득 하루 들르는 사람이, 책 한 자락 장만하는 나그네가, 작은책집을 돌보는 사람이, ‘돈을 하찮게 여기는 마음’일 수 없다. 돈은 돈대로 대수롭되, 서로 사랑으로 잇는 사이인 사람이라면, ‘빛나는 새길이 서로 살리는 숨결’이라고 여기기에, 즐겁게 온마음으로 책을 짓고 엮고 나누고 사고팔고 이야기한다고 느낀다. 보라! 돈을 보며 사람을 만나려는 이는, 사람 아닌 돈을 보기에, 이내 등돌리거나 속이거나 들볶는다. 이름값을 보며 사람을 사귀려는 이는, 사람 아닌 허울(이름값)을 보기에, 어느새 무리지어 작은이를 짓밟는다. 힘꾼한테서 떡고물을 얻으려는 이는, 사람 아닌 힘(권력)을 보기에, 처음부터 들풀에 들꽃을 함부로 밟고 나무를 함부로 베고 숲을 함부로 무너뜨린다. 돈이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돈을 만지거나 다루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에 어떤 눈길이느냐’에 따라 돈을 다르게 굴릴 뿐이다. 스스로 착하고 참하며 곱게 하루를 짓고 펴는 사람은, 돈이 있거나 없거나 착하고 참하며 곱다. 스스로 안 착하고 안 참하며 안 고운 사람은, 돈이 넘치거나 없거나 늘 안 착하고 안 참하며 안 곱다. 다스리는 마음부터 닦고서 돈을 벌거나 얻거나 쓸 일이다. 나누는 눈빛부터 기르고서 돈을 바라보거나 건사하거나 건넬 일이다. 책부터 읽거나 글부터 쓰다가는 거짓말쟁이나 눈속임꾼이나 돈바치로 뒹굴기에 좋다. ‘책을 왜 읽느냐’에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책을 읽어서 얻은 낱조각을 살림살이에 어떻게 녹이느냐’ 같은 길부터 익히고 추스르고서야 느긋이 천천히 책 하나 쥘 노릇이다. 마음 한복판에 사랑을 그려서 사랑씨앗을 심었으면, 책집을 차리건 찻집을 차리건 모두 아름답게 꿈을 편다. 사랑을 안 심은 채 뭔가 해보려고 붙잡는 사람들이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치달으면서 돈·이름·힘에 얽매여 고꾸라진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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