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말꽃삶 12 밥꽃에 잘 먹이는



  ‘이기적(利己的)’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저만 아는·나만 아는”이요, ‘나먼저·나부터’이고, ‘제멋대로·멋대로’라 할 만합니다. 이런 우리말을 바탕으로 ‘속좁다·얌체’라든지 ‘좁다·얕다’로 나타낼 만하고, ‘눈멀다·덜먹다’나 ‘어리석다·철없다’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일본스런 한자말 ‘이기적’이나 ‘이기주의’가 이런 여러 우리말 뜻이나 결을 품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온갖 우리말을 알맞게 쓰는 길을 우리가 스스로 잊으면서 잃었다는 얘기입니다.


  처음부터 대뜸 “넌 어리석어!”나 “그대는 철이 없군요!”라 하면 얼핏 ‘이기·이기적·이기주의’하고 먼 듯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쉽고 바탕이라 할 “저만 아는”부터 차근차근 뜻을 짚으면서 말결을 이어가노라면 ‘어리석다·철없다’뿐 아니라, ‘밉다·샘바르다’로도 나아가고, ‘괘씸하다·건방지다·고약하다’로도 흘러요. 때로는 ‘길미꾼·깍쟁이’ 같은 말이 어울립니다.


  어른이 어른스럽게 아이 곁에서 말을 들려주면서 북돋울 적에는 한꺼번에 다 알려주지 않습니다. 언제나 한 가지를 먼저 들려줍니다. 이다음에는‘이 한 가지 말’하고 비슷하지만 결이나 뜻이 살짝 다른 ‘두어 가지 말’을 들려주고, 차츰 가지를 뻗으면서 말나무를 살찌워요.


  말은 외워서 못 씁니다. 말은 살아가면서 씁니다. 말을 억지로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말은 ‘학습도구’가 아닙니다. 말은 서로 생각을 나누는 길에 이바지하는 씨앗입니다. ‘생각씨앗’인 말이요, ‘생각나무’로 뻗는 말입니다.


 영양만점·영양보충


  국립국어원 낱말책에조차 안 실은 일본스런 한자말 ‘영양만점·영양보충’을 짚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먼먼 옛날부터 아예 안 썼습니다. 이 말씨는 일본이 우리나라로 쳐들어와서 다스린 때부터 조금씩 쓰다가 어느새 확 퍼졌어요.


 영양만점 샐러드를 준비했다 → 맛찬 풀무침을 차렸다

 영양만점의 아침식사를 통해 → 맛진 아침을 먹으며

 영양만점의 요리를 만들어 → 맛밥을 차려 / 멋밥을 지어

 영양만점의 식단을 구성한다 → 맛깔진 밥차림을 한다


  “영양(營養)이 만점(滿點)이다”라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몸에 이바지를 한다는 뜻일 텐데, 예부터 쓴 우리말을 돌아본다면, 수수하게 ‘좋다·뛰어나다·빼어나다·훌륭하다’라고 하겠습니다. 앞말 ‘영양’은 군더더기입니다.


  오늘날에는 더 잘게 나누어 나타낼 수 있고, 넓거나 깊게 파고들어 그릴 수 있습니다. 이럴 적에는 새말을 엮습니다. 이를테면 ‘맛꽃·맛밥·멋밥’처럼 엮을 수 있어요. 흔히 쓰는 ‘맛나다·맛있다·맛좋다’에 새뜻을 얹을 수 있고요. ‘맛깔나다·맛깔스럽다·맛깔지다’를 함께 쓸 만하지요. ‘맛지다·맛차다’를 나란히 써도 어울립니다.


  새롭게 나타내고 싶기에 새말을 엮을 수 있고, 예부터 쓰던 말에 새뜻을 보탤 수 있습니다. 또는 이 둘을 다 해보아도 되어요.


 아무래도 영양보충이 필요하다 → 아무래도 잘 먹여야 한다

 청소년기에는 영양보충이 필요하니까 → 푸른철에는 살찌워야 하니까


  우리는 예부터 “영양(營養)을 보충(補充)하다”가 아닌, “잘 먹다”나 “잘 먹이다”라 말했습니다. 흔히 쓰는 말을 널리 쓰면 어울립니다. 잘 먹거나 잘 먹인다고 할 적에는 ‘살린다’는 얘기이기에 ‘살리다·살찌우다·기름지다’를 쓸 만합니다.


  몸에 힘이 나도록 잘 먹이려는 길이니 ‘챙기다·챙겨먹다’나  ‘추스르다·높이다·올리다·끌어올리다’ 같은 낱말로 나타내어도 어울립니다.


내가 너한테 영양만점 메뚜기 수프를 끓여 줄게

→ 내가 너한테 메뚜기국을 맛나게 끓여 줄게

→ 내가 너한테 메뚜기국을 맛깔스레 끓여 줄게


  어떤 밥이든 맛나게 차리면 됩니다. 어떤 국이든 맛깔스레 끓일 만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잊으면 밥을 먹으면서 정작 ‘밥’이라는 낱말을 잊더군요.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는 영양만점의 음식이다

→ 한 끼로 훌륭하다

→ 끼니로 좋다

→ 맛찬 밥이다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에 맞추어 먹는 밥을 ‘끼·끼니’라는 낱말로 가리킵니다. ‘밥’을 한자말로 ‘식사·음식’으로 나타내는 분이 있는데, 보기글처럼 “한 끼 식사”처럼 쓰거나 글자락 끝에 ‘음식’을 보태면 얄궂습니다. 겹말조차 아닌 겹겹말입니다. 한자말을 쓰더라도 ‘식사·음식’이 겹치고, “손색이 없는·영양만점의”가 겹칩니다. 단출히 “한 끼로 훌륭하다”나 “한 끼니로 알차다”라 하면 됩니다. “맛찬 밥이다”나 “맛깔진 밥이다”라 해도 되어요.


  글을 곱게 여미어 나누기에 ‘글꽃’입니다. ‘문학’이란 글꽃입니다. 말을 찬찬히 여미어 담기에 ‘말꽃’입니다. ‘사전’이란 말꽃입니다. 밥을 알차게 지어 누리기에 ‘밥꽃’입니다. ‘요리·식사’뿐 아니라 ‘영양·풍미’나 ‘레시피·조리법’이나 ‘미감·구미·식감’ 같은 일본스런 한자말을 우리말 ‘밥꽃’으로 품어낼 만합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잘 먹이고 싶은 마음이라면, 어른으로서 어린이가 잘 살려서 쓸 말을 가다듬고 추스르고 갈무리하고 북돋우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흔하고 쉬운 말씨 하나부터입니다. 놀랍거나 대단한 말씨가 아닌, 누구나 여느삶에서 단출하게 쓰고 듣고 나누는 말씨에 마음씨를 담아서 꽃씨처럼 고이 심을 수 있기를 바라요. 씨앗일 말 한 마디입니다. 말재주나 글재주를 부리지 않더라도, 차근차근 가꾸고 돌보는 손길을 빛내면, 시나브로 ‘솜씨’를 이룹니다.


 밥나눔터


  둘레를 보면 ‘무료급식소·무상급식소’처럼 한자로 엮어서 이름을 붙이기 일쑤입니다. 누구나 기꺼이 맞아들여서 밥 한 그릇을 나누는 곳이라면, 이러한 뜻이며 결을 그대로 살려서 ‘밥 + 나누다 + 터’ 얼개로 새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다니는 배움터에서는 “밥을 누리는 터”라는 뜻을 담아서 ‘밥누리터’처럼 살짝 다르게 새말을 지을 만합니다.


  많이 먹으려고 하거나, 맛난 밥을 찾는다면 ‘밥샘’처럼 새말을 엮을 수 있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찾아온 사람은 ‘밥손’이라 하면 됩니다.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을 누리는 길은 ‘의식주’보다는 ‘밥옷집·옷밥집·집밥옷’처럼 수수하고 쉽게 여밀 만합니다. 밥을 먹고 남은 것이라면 ‘음식물쓰레기’보다는 ‘밥쓰레기·밥찌꺼기·밥찌끼’라 하면 한결 나아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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