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7.7.

노래책시렁 326


《종이비행기》

 편집부 엮음

 산하

 1990.1.20.



  모든 아이는 어버이 품에서 태어납니다. 낳은 어버이는 아이들을 어질고 슬기로이 돌보면서 가르치기도 하지만, 낳기만 할 뿐 이렇다 할 살림길을 못 보이거나 못 가르치기도 합니다. 오늘날 이 나라를 보면, 아이들은 어버이 곁을 일찌감치 떠나서 어린이집을 들락거리고, 어린배움터에 깃드는 때부터 아예 ‘다른 어른’ 사이에서 배움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어린배움터·푸른배움터는 ‘삶·살림·사랑’을 보여주거나 알려주거나 들려주면서 함께 이야기하는 터전이 아닙니다. 퍽 오래도록 수렁(지옥)입니다. 수렁을 거친 사람들이 짝을 만나서 낳은 아이를 다시 수렁에 밀어넣고, 이 아이들은 다시 짝을 만나서 낳은 아이를 또 수렁에 넣은 지 한참입니다. 《종이비행기》를 되읽었습니다. 1980∼90년대에 어린이·푸름이가 제 목소리를 내도록 북돋우려는 길잡이가 더러 있었고, 이 꾸러미는 ‘푸른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았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어른 시인 흉내’로 끄적거려요. 다 다른 고장에서 태어나 다 다른 하루를 맞이하는 어린이·푸름이는 다 다른 목소리로 삶을 사랑하는 살림길을 짓고 그리고 펼 노릇입니다만, 삶길도 살림길도 사랑길도 못 보고 못 배우는 채 ‘굴레길’에서 쓰는 글이란, 그저 허울이자 수렁입니다.


ㅅㄴㄹ


베네통 상표가 화려하게 붙은 / 옷가게 앞에서 / 외국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 번쩍이는 영문간판 아래 앉아 있으면 // 귀걸이가 팔찌보다 커다란 여자 / 손톱에 색색의 매니큐어 / 야할대로 야해 버린 도시의 여자 (혜화동 거리에서―김정하 ㄱ여고 1/21쪽)


쉬는 시간 / 교실 베란다에서 / 날린다 종이비행기를 / 접어서 자율학습의 피로를 / 가득 실어 날린다. // 형광등 조명을 반사한 채 / 비행기는 정적을 가르며 / 날았다 아무도 없는 곳까지 / 어둠을 간직한 운동장까지 / 바람을 타고 높이 / 높이 날았다 (야간비행―송승환 고 2/72쪽)


간이역을 서성이다 / 되돌아서던 옛 추억이 / 쓸쓸히 비에 젖어 있다 // 삽교천 다리 아래 비가 내리고 / 굳게 닫힌 철문으로 비가 내리고 // 어머니 갯벌을 후비던 손을 잡고 / 내 가슴을 휩쓸고 가는 / 파도소리를 듣는다 (막차를 기다리다가―노시영 ㄱ여고 2/12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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