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책집마실


창작과비평사 (2022.12.7.)

― 광주 〈유림서점〉


 

  지난날에는 누구나 하루에 한 발짝씩 스스로 나아가는 살림이었다면, ‘배움터(학교)를 오래 다니는 사람이 늘수’록 스스로 하루에 한 발짝씩 나아가려는 살림을 잊으면서 잃는 분이 부쩍 늘어나는구나 싶어요. 우리가 ‘하루 한 발짝 나아가는 살림빛’을 잊거나 잃었다면 ‘하루 한 뼘씩 나아가는 살림길’부터 천천히 새롭게 헤아리면 될 텐데 싶어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햇살은 한 뼘보다도 더디게 스며들면서 온누리를 고루 따뜻하게 덥혀 줍니다. 우리 스스로 햇살이요 별빛이며 빗물인 줄 느끼면 스스로 빛납니다.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햇살일까요? 우리는 해를 쬐거든요. 우리가 먹는 쌀밥이란, 해를 듬뿍 머금은 나락이에요.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별빛일까요? 모든 열매에 낟알은 밤새 별빛을 받습니다. 온누리를 별빛으로 잠들면서 새로 꿈꿉니다.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빗물일까요? 비오는 날 혀를 낼름하면서 바로 마시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 빗물은 흙으로 스미고 풀꽃나무가 마시고 모든 목숨붙이가 받아들입니다. 바닷물은 빗물이고, 빗물은 냇물이고, 냇물은 바닷물이에요.


  글을 쓰는 분이라면 스스로 쓰는 글을 맨 먼저 스스로 되읽고 자꾸 읽습니다. 스스로 쓰는 글에 맞추어 스스로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깨어납니다. 어떤 이야기라도 글을 쓸 만합니다. 쓰는 이야기 그대로 ‘나’를 이뤄요. 그런데 아무 이야기나 쓴다든지, ‘사랑 없는 미움’을 이야기로 쓸 적에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멍들고 찌들고 시든 몸으로 구릅니다.


  책을 읽는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사랑을 짓는 이야기를 읽나요? 서울(도시)에서 쳇바퀴를 돌면서 다투고 싸우고 아프고 찌르고 밟고 울고 고단한 줄거리를 읽나요?


  광주에서 여러 책집을 돌고서 〈유림서점〉에 마지막으로 깃듭니다. 한 곳을 더 돌아볼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유림서점〉은 바로 옆에 쉼터가 나란히 있습니다. 책집지기 따님이 꾸리는 쉼터입니다. 다리를 쉬고 등허리를 펴면서 잎물을 한 모금 마십니다. 책더미를 새로 묶습니다. 일찌감치 길손채에 가서 씻고 빨래하고 드러누워야겠습니다.


  오늘은 《創作과 批評》을 여럿 장만했습니다. 열여덟 살 무렵에 인천 배다리 헌책집을 다니면서 다 읽은 묵은책이지만, 서른 해 만에 되읽으니 새삼스럽습니다. 일찌감치 빛난 넋을 밝힌 글어른이랑, 이때부터 썩은 글줄을 휘갈긴 꼰대를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나저나 ‘창비’는 이제 ‘뭇빛(다양성)’을 잊고 잃었습니다.


ㅅㄴㄹ


《氷點 6 運命》(三浦綾子/맹사빈 옮김, 양우당, 1983.9.1.)

《시정신과 유희정신》(이오덕, 굴렁쇠, 2005.10.25.)

《나무의 일기》(김용석, 태양사, 1987.8.25.)

《創作과 批評 28, 1973 여름》(편집부, 창작과비평사, 1973.6.25.)

《創作과 批評 44, 1977 여름》(편집부, 창작과비평사, 1977.6.5.)

《創作과 批評 48, 1978 여름》(편집부, 창작과비평사, 1978.6.5.)

《創作과 批評 54, 1979 겨울》(편집부, 창작과비평사, 1979.12.5.)

《創作과 批評 56, 1980 여름》(편집부, 창작과비평사, 1980.6.5.)

《金大中 演說總覽 1960∼1990 思想과 能辯》(김대중 말, 박석무 엮음, 제민각, 1990.12.30.)

《譯註·原文 三國遺事 修正版》(일연/이병도 옮김, 명문당, 1956.첫/1986.)

《完譯·原文 三國史記 改正版》(김부식/김종권 옮김, 명문당, 1960.9.30.첫/1986.)

《대한민국 표류기》(허지웅, 수다, 2009.1.20.)

《아르센 뤼팽 전집 3 기암성》(모리스 르블랑/성귀수 옮김, 까치, 2002.4.5.)

《저항과 명상》(윤공희 대주교 외, 5·18기념재단, 1989.5.18.첫/2017.12.29.)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1》(전유성, 가서원, 1997.4.15.첫/1997.5.25.10벌)

《中國古典選 11 老子 下》(福永光司, 朝日新聞社, 1978.10.20.)

《リ-ダ-ズダイジェスト 第38卷4號》(편집부, 日本リ-ダ-ズダイジェスト社, 1983.4.1.)

《ロ-バ-リング ッウ サクセス》(ベ-デン ペウエル/편집부 옮김, ボ-イスカウト日本連盟, 1967.8.1.첫/1978.5.1.5벌)

《綜合敎育技術 4月號 特別付錄 '90年度版 敎師の便利帳》(中野早苗 엮음, 小學館, 1990.4.1.)

《マレ-戰車隊》(島田豊作, 河出書房, 1967.11.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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