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826


《취중진담 1》

 송채성 글·그림

 서울문화사

 2001.3.5.



  열아홉 살이던 1994년에 인천하고 서울을 날마다 오가며 ‘사람밭’을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서울로 가까울수록 ‘내리는 사람은 적고 타는 사람만 많’아, 먼저 타도 나중 타도 납작납작 짓눌리는 눈물바다였어요. 그무렵은 바람날개(선풍기)조차 없기 일쑤였습니다. “서울사람은 불수레(지옥철)를 모르겠지?” 즈믄(1000)이 넘는 사람을 작은 칸에 욱여넣는 죽음길에 넋을 잃기 싫어 머리 위로 책을 들고서 읽었습니다. 1998년에 서울 기스락 신문사지국에 짐을 풀어 나름이(신문배달부)로 먹고살며 불수레하고 헤어집니다. “나는 불수레에서 나왔지만, 동무와 이웃은 오늘도 불수레에서 뭉개지겠구나!” 《취중진담 1∼3》은 2001∼02년에 낱책으로 나옵니다. 송채성(1974∼2004) 님은 이 그림꽃으로 둘레에 이름을 알렸으나 《쉘 위 댄스》하고 《미스터 레인보우》까지 그리고서 이슬이 되었습니다. 숨조차 못 쉴 수레에 갇힌 사람은 서로 ‘짐짝’이었습니다. 밟히고 구르니 악에 받히기도 하지만, 외려 이웃을 더 헤아리는 마음이 싹트기도 합니다. 맨마음과 맨몸으로 어울리는 곳에서도, 지치거나 슬픈 빛이 만나는 곳에서도, 들꽃이 핍니다. 불수레 미닫이(창문)로 이따금 나비가 들어왔어요. 작은이는 작기에 밑바닥을 구르지만, 이 밑바닥에는 바닥꽃이 피고, 나비가 날면서 햇볕을 나눕니다. 작은 틈새에 씨앗이 깃들어 푸른빛이 퍼지듯, 사람 사이가 좀더 넉넉하고 아늑하기를 바라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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