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컵라면 2023.5.21.해.



네가 집에 있으면, 집에 갖춘 살림을 다루어 하루를 누리지. 네가 집에 없으면, 길에서 가볍게 바로바로 누릴 살림을 살필 테고, 집에서는 느긋이 차리고 누리고 치운다면, 길에서는 얼른 써서 덮어. 길에서는 바로 치우기보다는 나중에 치우자고 여기면서 네가 갈 곳과 할 일을 살핀단다. 집에서 ‘컵라면’을 먹는 사람도 있을 텐데, ‘집’이 ‘살림하는’ 곳이 아니라 ‘머물다 떠나는’ 곳이기 때문이야. ‘컵라면’은 오래오래 건사할 그릇에 담아서 느긋이 끓여서 누리는 밥살림이 아니지. 얼른 끓여서 얼른 먹고는 얼른 버리려는 먹을거리야. 불을 땔 수 없다든지, 느긋할 수 없는 데에서 오래 머물려면 ‘컵라면’이 이바지할 수 있어. 생각해 보렴. 바쁠 뿐 아니라 아슬아슬한 데에서 무엇을 어느 만큼 챙기거나 살피겠니? 바쁘며 아슬한 자리를 걱정없이 보낼 작은힘을 얻자고 여기겠지. 그런데 너희는 왜 바쁘거나 아슬한 곳을 자꾸 만들까? 길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왜 얼른 해치우듯 보내고 지나가면서 버리는 쳇바퀴를 되풀이할까? ‘라면’이 더 좋지 않고, ‘컵라면’이 더 나쁘지 않아. 집밥·집빵이 더 낫지 않아. 바라보고 다루어 받아들이는 마음이 너를 살리거나 죽인단다. 사랑으로 바라보기에 라면도 컵라면도 사랑을 듬뿍 담아서 웃음씨앗으로 퍼져. 사랑을 그리지 않기에, 손수 심고 가꾸고 갈무리하고 짓고 나누지만, 갑갑하게 고일 수 있어. 해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해도 똑같이 내리쬐는구나. 바람은 사람들이 마구 떠들어도 부드러이 맑게 부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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