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재 창비시선 18
신경림 지음 / 창비 / 197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5.11.

노래책시렁 309


《새재》

 신경림

 창작과비평사

 1979.3.30.



  늘 그렇습니다만, 미움을 마음에 담으면 언제나 미움이 일어납니다. 미움씻이를 마음에 담으면 늘 미움씻이가 퍼집니다. 미움씻이는 미움보다 나을까요? 그런데 미움을 마음에 담든, 미움씻이를 마음에 담든, 우리 마음에는 고스란히 미움 한 자락이 떠오릅니다. 《새재》를 서른 해 만에 되읽어 보니, 이 글자락이 품은 말씨앗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움’이었구나 싶습니다. 예전에 읽을 적에는 속이 께름했다면, 새로 읽으면서 어쩐지 글쓴이가 딱합니다. 냇물 건너에서 구경하는 팔짱짓으로 슥슥 옮긴 글에 심은 미움씨앗은 참으로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만, 이 미움씨앗을 등에 업고서 글힘(문단권력)과 벼슬힘(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오늘날 무엇을 할까요? 힘을 거머쥔 이들한테서 비롯한 저지레가 들통이 나도 어쩐지 이들은 핑계가 넘칠 뿐, 뉘우치는 일도 힘(권력)을 내려놓고서 시골로 가겠다는 몸짓도 없습니다. 시골은, 서울내기가 놀러다니는 구경터가 아닙니다. 시골은 시골내기가 시골빛을 일구면서 조용히 풀노래를 듣고 숲노래를 맞이하면서 별노래를 심는 살림터입니다. 신경림 님이 구경글이 아닌 삶글을 여미었다면 스스로 빛났을 텐데, 스스로 빛나기보다는, 그러니까 ‘심기(씨앗심기)’보다는 ‘심(글힘)’을 바란 듯싶습니다.


ㅅㄴㄹ


펄럭이는 쾌자자락 새파란 무당 / 분 먹인 얼굴에 서슬 세웠네 / 둥두 둥두둥 둥두 둥두둥 / 갈대밭에 얼굴 박고 잠든 아이야 / 여울물에 머리 풀고 우는 아이야 / 아낙네들 메밀밭서 제 설움에 겨운데 / 둥두 둥두둥 둥두 둥두둥 / 대낮에도 강 건너엔 아우성 소리 (白畵/10쪽)


어차피 우리는 형제라고 / 아가씨야 너는 그렇게 말하는구나 / 가난과 설움을 함께 타고난 /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형제라고 // 역앞 장터 골목은 누렇게 녹이 슬고 / 덜컹대는 판장들이 허옇게 바랬는데 (君子에서/29쪽)


우리는 밟혀도 분노할 줄 모른다 / 우리는 찢겨도 일어설 줄 모른다. // 그러나 한 아낙네 / 왜놈 기사가 희롱할 때, / 홑적삼이 찢기고 무명치마 뜯어질 때, / 야윈 젖가슴에 더러운 손 들어갈 때, / 내 살점은 떨리고 / 몸에 소름이 돋았다. (새재/108∼10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