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그림책의 세계
마쓰이 다다시 지음, 이상금 엮음 / 한림출판사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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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숲노래 동화읽기 2023.5.6.

맑은책시렁 276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

 마쓰이 다다시

 이상금 옮김

 한림출판사

 1996.7.20.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마쓰이 다다시/이상금 옮김, 한림출판사, 1996)를 1998년에 처음 읽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은 그림책을 펴낸 발자취가 몹시 긴데, 오랜 발자취가 있을 만하구나 싶었고, 우리나라는 1996년을 지나 2000년에 이르는데에도 아직 그림책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모를 뿐더러, 아이 곁에 어떤 그림책을 놓아야 아름다운가를 헤아리지도 못 하는구나 싶었어요.


  마쓰이 다다시 님이 글을 쓰고 책을 낸 지는 꽤 되었습니다. 알고 보면 한글판조차 퍽 늦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림책밭을 일구는 손길이나 눈길도 얕았던 터라, 그림책을 속깊이 바라보는 책을 옮기는 일에서도 늦었다고 해야겠지요.


  그래도 여러 펴냄터가 온누리 아름그림책을 꾸준히 한글판으로 냈고, ‘어린이책을 옮긴 적이 없는 탓에 어린이책을 엉성한 일본말씨로 옮긴 이들이 수두룩’했어도, ‘어린이책을 어린이 눈높이로 옮기자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조금씩 늘면서 천천히 발돋움하여 2020년을 넘었습니다.


  어린이부터 읽는 책, 어린이랑 함께 읽는 책, 어린이 곁에 앉거나 어린이를 무릎에 앉혀서 어른이 소리를 내어 말빛·말결·말가락에 얹는 마음을 들려주는 책이 ‘어린이책’입니다.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에도 나옵니다만,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혼자서 읽는 책이라고는 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말’을 소리와 삶과 몸짓으로 받아들이고 익힙니다. 곁에서 어버이·어른이 어느 낱말을 입으로 소리를 낼 적에 눈여겨보면서 느껴요. 또한, 어느 낱말을 쓰면서 어느 삶자리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지켜보지요.


  소리내어 읽어 주는 책이 ‘어린이책’인 터라, 모름지기 모든 어린이책은, 동시도 동화도 ‘소리를 내어 읽어 주는 글’로 여밀 노릇입니다. ‘글말 아닌 입말’로만 써야 할 어린이책입니다. 또한, 어린이가 말을 귀와 삶과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장 쉽고 수수한 우리말로 가다듬고 손질해서 부드럽게 노래하듯 들려줄 줄 알아야지요.


  어느덧 ‘어린이책 옮김이(번역가)’가 꽤 늘었으나,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돌보거나 건사하는 길을 꾸준히 새롭게 익히면서 이웃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꾼은 뜻밖에 매우 적습니다. 일자리(직업)로 옮김이 노릇을 하는 사람들만 너무 많습니다.


  어린이책을 쓰는(창작하는) 사람도 매한가지예요. 어린이책을 쓰는 일이란, ‘문학인’이 되려는 뜻일 수 없습니다. 어린이가 ‘말 한 마디로 삶을 새롭게 배워서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슬기롭고 참한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에 마음에 씨앗으로 담을 길을 곁에서 동무로 지켜보는 사람이 쓸 어린이문학이고 어린이책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보면, ‘장사하려는 어린이문학과 어린이인문’이 끔찍하게 넘칩니다. ‘어른 인문책’을 조금 추려서 ‘어린이 인문책’으로 꾸미는 큰 펴냄터까지 많습니다. 제발 어린이를 장삿속으로 쳐다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린이를 내세워 돈벌이를 하지 맙시다. 어린이한테 소리내어 들려줄 이야기를 쓰고 옮기고 짓고 엮고 펴내어, 함께 ‘새누리(새터·새길)’를 짓는 ‘어진 어른’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그림책은 어린이가 읽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어른이 아이에게 ‘읽어 주는 책’입니다. (14쪽)


그림책은 지식을 주입하거나, 문자를 가르치거나, 혼자 읽기를 훈련하는 교재가 아닙니다. 과학에 관한 책이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24쪽)


재미있는 것은 엘사의 모델은 언제나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아들들은 각자 ‘자기 그림책’을 가진 셈이고, 그들은 어른이 된 후에도 그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86쪽)


내가 《메리와 양》을 읽어 주던 시절, 우리 집 아이들은 양을 본 일이 없었습니다. 양이나 오리 같은 가축과 우리 집은 인연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아이들이 《메리와 양》을 좋아하고 공감하는 것이 처음에는 신기했습니다. (99쪽)


믿고 소망하고 사랑하는 힘을 잊기 쉬운 우리들에게 스테이크는 당나귀 가족의 마음의 교류를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당신들 속에 있는 그 힘을 다시 한 번 상기하세요”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217쪽)


#松居直 #まついただし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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