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벽화 2023.4.24.달.



너희는 머리가 있니? ‘머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되묻겠니? 그러나 물어볼 수밖에 없구나. 너희는 참으로 ‘머리 있는’ 사람이 맞아? 몸통에 대롱대롱 달린 동그란 털조각이 있을 뿐 아닐까? ‘머리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생각을 하고, 스스로 어제·오늘·모레를 바라보고, 스스로 살림짓기를 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겠지. 그러나 너희는 어쩐지 ‘머리 시늉’을 몸에 매단 듯해. ‘가슴 시늉’을 몸에 붙여서 ‘느끼거나 나누는 마음’조차 없는 듯하고. 너희가 짓는 집을 살펴보자. 너희는 담벼락에 그림을 넣니? 예부터 살림집에는 바람을 알맞게 긋고 가릴 흙담이나 돌담을 쌓았어. 바람이 부드러운 데라면 담이 없어도 되겠지만, 담을 가볍게 둘러서 비바람이나 돌개바람을 가리려 했지. 그런데 흙담·돌담에는 으레 덩굴꽃이나 덩굴나무가 뻗지. 담쟁이가 뻗기도 하고, 담을 따라 꽃대가 오르거나 나무가 서기도 해. 굳이 담이 없어도 풀꽃나무가 가리개 노릇을 할 텐데, 담을 세운 뒤에는 사람이 심기도 하고 새가 심기도 하면서 풀꽃나무가 우거진단다. 그러니까 담그림(벽화)을 따로 새길 일이 없어. 덩굴이 뻗고, 나무가 오르고, 빨랫대를 받치기도 하는 담에 뭣하러 큰돈을 들여 그림을 담니? 가만 보면 서울(도시)에 높게 박은 잿더미(아파트)를 따라서 ‘바깥담’에 그림을 넣을 수는 있겠더라. 풀꽃나무를 밀어내고 들숲을 파헤친 탓에 푸른기운이 없는 ‘잿집’은 죄다 똑같이 생겨서 매캐하니까 그림이라도 붙여야겠지. 이와 달리, ‘살림집’으로 이룬 골목집이 마주붙은 골목담에 왜 돈들여 담그림을 새기니? 나무를 심거나 꽃씨를 심으렴. 철마다 새로 자라는 그림을 보기를 바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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