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해처럼 풀잎처럼 사람처럼 (2022.11.22.)

― 서울 〈콕콕콕〉



  부천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갑니다. 구로에서 엉뚱하게 내리고서 “어? 낯선데? 여기는 어디이지?” 하고 헤맵니다. 그림책집 〈콕콕콕〉에 가려고 했는데 그만 길잃은 아이가 됩니다. 넋을 차리고서 다시 전철을 타고서 오류동으로 갑니다.

  발걸음이 뿌리내리면 눈감고도 길을 찾겠지요. 석걸음 넉걸음 느슨히 이으면 서울에서도 거뜬히 길찾기를 하리라 봅니다.


  해는 우리한테 세 가지를 베풉니다. 빛(햇빛)은 ‘모습·무늬’이고, 볕(햇볕)은 ‘숨·목숨’이고, 살(햇살)은 ‘길·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사람도 서로서로 빛과 볕과 살을 나눌 테고, 풀꽃나무와 들숲바다도 이 세 가지를 늘 편다고 느껴요.


  저마다 아름다움이라는 길을 바라보는 오늘 하루를 지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거닙니다. 묵직한 등짐 탓에 천천히 걷지는 않아요. 두 아이를 안고도 척척 걷거든요. 발걸음이 닿는 둘레에 돋는 가을풀을 살펴보고, 걸어서 오가는 곳에서 올려다볼 수 있는 하늘을 헤아립니다. 이곳에 흐르는 바람결을 읽습니다.


  이제 〈콕콕콕〉에 닿습니다. 그림책 사이에서 붓길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시골내기는 종이책이 없더라도 풀잎과 씨앗과 빗방울과 이슬로 하루를 읽고 배웁니다. 서울이웃은 맨손으로 어루만질 풀잎이나 씨앗이나 빗방울이나 이슬이 무척 멀 만해요. 서울에서는 걷다가 길바닥에 쪼그려앉을 틈이 없다시피 하고, 문득 올려다보아도 하늘빛이나 별빛을 그리기 어렵습니다.


  만화책을 깊고 넓게 읽은 사람은 ‘만화책은 만화로만 담아낼 수 있는 깊고 너른 길이 있는’ 줄 알아요. 사진책을 깊고 넓게 읽은 사람은 ‘사진책은 사진으로만 옮길 수 있는 깊고 너른 숲이 있는’ 줄 알아요. 노래책(시집)을 깊고 넓게 읽은 사람은 ‘노래책은 노래(시)로만 그릴 수 있는 깊고 너른 숨이 있는’ 줄 알지요. 동화책을 깊고 넓게 읽은 사람은 ‘동화책은 동화로만 나눌 수 있는 깊고 너른 빛이 있는’ 줄 알 테고요. 그림책을 깊고 넓게 읽은 사람은 ‘그림책은 그림으로 누구나 어깨동무하는 사랑이 있는 줄 깊고 넓게 알’리라 생각해요.


  다 다른 갈래는 그저 다 다르기에 빛납니다. 어느 하나를 높이려 하면 바로 이 하나부터 깎여요. 아름다운 다 다른 책을 읽고서 눈물웃음을 지은 분이라면 ‘그림책이 누구나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을 담는 갈래’라는 대목만 느긋이 짚고서 이야기하리라 봅니다. 삶을 노래하는 사랑을 작은 책 한 자락에서 찾을 만합니다.


  걷다가 헤매니 새길을 찾고, 첫마음을 잃었으면 새마음을 키웁니다. 읽다가 덮으며 하루를 되새기고, 첫마음을 되새기며 오늘 이곳을 새록새록 돌아봅니다.


ㅅㄴㄹ


《우유에 녹아든 설탕처럼》(스리티 움리가 글·코아 르 그림/신동경 옮김, 웅진주니어, 2022.8.23.)

《소녀와 원피스》(카미유 안드로스 글·줄리 모스태드 그림/김선희 옮김, 봄의정원, 2019.12.1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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