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3.3.19.
《한 권의 책》
최성일 글, 연암서가, 2011.10.25.
텃노랑민들레 두 송이가 핀다. 곁에 앉아 쓰다듬는다. 앵두꽃이 뭉게뭉게 오른다. 옆에 서서 코를 댄다. 새노래를 듣는다. 바람소리를 듣는다. 개구리울음을 듣는다. 모두 받아들이는 싱그러운 봄빛이다. 녹이는 봄이요, 녹는 철이다. 푸르게 녹이고, 풀어내듯 녹는다. 풀빛으로 녹기에 봄맞이를 하려고 새가 찾아오고, 푸르게 녹으려 하니 풀벌레가 하나둘 깨어나고, 개구리도 겨울잠을 마친다. 봄이란, 보는 철이다. 봄이니, 바라보고 품으면서 풀어놓는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 2011년에는 책집에 서서 훑은 뒤에 내려놓았고, 2023년에 찬찬히 짚어 보았다. 글쓴이뿐 아니라 숱한 글바치는 으레 이렇게 글붓을 쥐더라. 왜 “책 하나”처럼 우리말씨를 안 쓰고 “한 권의 책”처럼 엉성하게 옮김말씨를 쓸까? 1988년에 처음 영어를 배울 적에 길잡이(교사)는 “‘한 잔의 커피’는 우리말이 아닙니다. ‘커피 한 잔’으로 옮겨야 합니다.” 하고 가르쳤는데, 요새 이렇게 가르치는 길잡이가 있을까? 글을 쓰자면, ‘글로 옮기는 말’부터 다스릴 노릇이다. ‘마음을 담는 말’부터 어질고 슬기로이 가다듬지 못 한다면, 무슨 글을 쓰겠는가? ‘삶으로 풀어내는 마음’이요 ‘삶을 그리는 마음’이기도 하니, 삶·넋·말·글은 늘 하나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한 권의 책 → 한 자락 책 . 책 한 자락 . 책 하나
“비판은 언제나 두렵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이 속한 분야를 향한 비판은 더욱 그래서일 것이다
→ “따지기란 언제나 두렵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몸담은 곳을 따지기란 더욱 두렵고 어려우리라
→ “나무람은 언제나 두렵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가 깃든 곳을 나무라기란 더욱 두렵고 어렵다
사서의 전문적 자질에 대해 꾸준히 문제의식을 가진 점을 감안해도
→ 책숲지기가 제대로 일하는지 꾸준히 따진 대목을 헤아려도
→ 책숲일꾼이 옳게 일하는지 꾸준히 짚은 대목을 살펴보아도
도서관인의 자기성찰보다 신분보장에 더 주의를 기울인 것은 약간 유감스럽다
→ 책숲일꾼 스스로 뉘우치기보다 자리지키기에 더 마음을 기울이니 안타깝다
→ 책숲지기로서 돌아보기보다 이름붙잡기에 더 마음을 기울이니 안타깝다
부모가 먼저 책을 읽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고
→ 어버이가 먼저 책을 읽어 보여야 한다고
→ 어버이부터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감이 와닿는 원고는 일필휘지로 단숨에 완성시켰지만
→ 문득 와닿는 글은 한숨에 마무리했지만
→ 와닿는 글자락은 곧장 써냈지만
→ 와닿는 글은 내리썼지만
친일 행위자를 척살하거나 부관참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 일본에 붙었다고 죽이거나 파내려는 뜻이 아니다
→ 일본을 도왔다고 찌르거나 되죽이자는 말이 아니다
부록에다 본문에 언급된 50여 권의 서지사항을 수록했는데 무려 일곱 권의 출간 연도가 잘못 기재되었다
→ 붙임에다 글에서 다룬 쉰 자락 책자취를 실었는데 자그마치 일곱 자락이 나온해가 틀렸다
→ 딸림에다 글에서 밝힌 쉰 자락 책풀이를 담았는데 일곱 자락이나 펴낸해를 잘못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