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작은새 (2022.10.12.)
― 정읍 〈작은새책방〉
정읍에 처음 발을 디뎌서 찾아간 곳은 〈서울서점〉입니다. 이다음으로 찾아가는 곳은 〈작은새책방〉입니다. 정읍에 다른 볼거리나 구경터가 곳곳에 있으리라고 여기지만, 저 혼자 다닐 적에는 책집부터 바라봅니다. 아이들이랑 정읍마실을 한다면 정읍이 품은 숲이나 멧골이나 냇가나 바다가 있는가부터 살피고요.
큰아이를 낳은 인천에서 아이랑 바람을 쐬거나 아이가 걸음마를 익히려고 다닌 데는 인천 골목길입니다. 쇳덩이가 드나들지 않거나 드나들 수 없이 오직 걸어서 다니기만 하는 골목을 따라 인천을 샅샅이 누볐어요. 쇳덩이가 씽씽 달리는 큰길가 가게나 집도 쪽틈에 꽃그릇을 놓고, 하늘칸(옥상)에 텃밭을 꾸리는데, 안골은 온통 꽃누리였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려면 ‘문화·교육·여가 시설’이 아닌, ‘풀꽃나무로 흐드러지되, 쇳덩이는 드나들 수 없는 터전’을 넉넉히 둘 노릇입니다. 돌봄집(유치원)·어린이집을 늘려야 하지 않아요. 나라에서는 ‘돌봄집·어린이집에 드는 돈’을 뒷배한다고 하지만, ‘모든 어버이가 집에서 아이랑 하루 내내 어울리면서 사랑을 물려주고 물려받는 보금자리를 이룰 밑돈(기본소득)’을 댈 노릇입니다.
어버이 손길을 듬뿍 누리며 자란 아이들은 막말(욕)을 안 합니다. 어버이 손길을 못 누리는 숱한 아이들은 일찍부터 마음이 다치고 깨지는 바람에 스스로 갉고 깎는 말을 자꾸 입에 담습니다. 아름나라로 가꾸는 밑돈은 대단히 적습니다. 어버이·어른이 집과 마을에서 일하고, 아이들이 집과 마을에서 놀면서, 언제나 풀꽃나무 우거진 들숲바다를 누리면, 저절로 가멸차고 푸진 터전을 이룹니다.
〈작은새책방〉에 찾아오는 길에 시외버스에서 ‘작은새’ 노래꽃을 썼어요. 작은사람·큰사람이 따로 없듯 작은새·큰새도 따로 없습니다만, 마을책집이 ‘작은새’이기에 이 푸른터가 정읍이란 마을에서 어떤 빛씨앗으로 이웃을 만나면서 아이들한테 즐거운 쉼터일까 하고 그리면서 이야기를 여미었습니다.
우리는 헤매기 때문에 헤아리는 마음이 싹트지 싶습니다. 앓기 때문에 알아간다고 느낍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새롭게 피어나고, 스스로 읊는 말에 따라 마음이 바뀌어 갑니다.
가을볕과 가을바람을 타고서 살랑살랑 손길을 타는 책을 바라봅니다. 깊어가는 가을빛과 가을살림을 품고서 사근사근 이야기가 퍼지는 하루를 글로 옮깁니다. 아이는 알아가고, 푸름이는 푸르게 우거지고, 어른은 어질게 거듭나고, 어버이는 가시버시가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익힙니다. 모두 사랑으로 숲빛입니다.
《나의 끝 거창》(신용목, 현대문학, 2019.3.25.)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장정일·한영인, 안온북스, 2022.9.1.)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하야카와 유미/류순미 옮김, 열매하나, 2021.5.1.)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