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3.3.11.
《빌뱅이 언덕》
권정생 글, 창비, 2012.5.25.
아침 안개비를 맞이한다. 3월 첫머리는 철갈이 안개로구나. 어제그제 청주랑 서울을 다녀오는 길에는 이 안개를 못 봤다. 요새 안개가 드리우는 고장은 얼마나 될까? 어릴 적 인천에서 안개를 흔히 만났다. 도무지 걸을 수 없을 만큼 짙게 안개가 끼곤 했다. 안개밭에 뛰어들어 술래잡기를 하며 얼마나 재미났는지. 걷다가 서로 부딪히고, 전봇대나 나무에 들이받기 일쑤였지만, 안개가 끼는 날이면 어린이는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왔다. 어느새 뭉게구름이 사라진 지 한참이고, 안개도 사라진 지 한참인 셈일까. 봄날 땅에서 아지랑이가 안 올라온 지도 한참인데, 이렇게 사라지는 숨결을 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는 하루인 셈일까. 《빌뱅이 언덕》을 읽었다. 이미 다른 책에서 읽은 글이지만 새삼스럽다. 이처럼 ‘날서고·나긋하고·날갯짓’이 깃들면서‘나무빛·나다움’을 ‘낮고·낫게’ 들려주는 글은 떠난 어른한테서밖에 없을까. 스스로 낮게 살며 스스로 낫는 길을 안 걷는다면 이처럼 글을 못 쓰리라. 뚜벅뚜벅 천천히 걷는 몸짓이 아니라면 글빛이 아닌 쇳빛(쇳덩이)이 그득한 갈라치기를 쏟아내리라. 갈수록 글을 잊은 굴레에 스스로 가두는 몸짓이 늘어난다. 마음을 맑게 밝히는 말을 심으면 글은 저절로 태어날 텐데.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