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과 글이라는 꽃 (2023.3.9.)

― 청주 〈달꽃〉



  청주 마을책집 〈달꽃〉은 2023년 3월 30일까지 연다고 합니다. 네 해에 이르는 책살림은 접습니다. 책집이 떠난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설 테고, 다른 이야기가 이어가리라 봅니다. 그러나 그곳에 책집이 있던 자국은 언제까지나 흘러요.


  우리말 ‘자’는 ‘길이’가 있는 ‘단단한 것’을 가리킵니다. 앞에 서거나 스스로 나서려고 하는 숨결도 ‘자’를 넣습니다. 집(ㅁ)으로 둘러싸는 받침을 넣은 ‘잠’은, 반듯하게 누워서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나타내고, ‘잠기다·잠그다’로 잇는데, ‘잠’이 나비한테도 사람한테도 새몸과 새빛으로 깨어나는 길을 밝히는 말밑이듯, ‘자리’는 모든 곳을 짓거나 이루는 바탕을 나타내요.


  ‘자위·자욱·자국’으로 뻗으면 삶결이 깨어나거나 묻어난 바탕을 나타냅니다. 책집이 있던 자리는 앞으로 잊힐 만하지만, 책집으로 만나던 자욱이며 자국은 책손 마음에 가만히 남을 테지요.


  우리는 자고 깨어나는 하루를 누리면서 언제나 새롭게 달라지면서 거듭나는 마음입니다. 어제하고 오늘은 누구나 다른 숨결이자 삶입니다. ‘나’는 ‘나아가’려고 생각을 ‘낳’고는 ‘날아오’르듯 ‘너머’로 가서 ‘너’를 만나 뭇삶길을 ‘넘나들’려는 숨빛입니다. 달에도 꽃이 피고, 꽃에도 별빛이 있고, 별에도 바람이 불고, 바람에도 길이 있어요.


  나는 너보다 높거나 낮지 않습니다. 너는 나보다 낫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몸짓이자 같은 넋입니다. 같은 하늘을 누리고, 같은 땅을 디디며, 같은 풀꽃나무 곁에서 푸르게 어우러지는 숨소리입니다.


  마을책집 〈달꽃〉에 깃들면, 해가 들어오는 자리에서 배움터를 환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책집 앞 배움터를 오가는 아이들은 책집을 얼마나 알아보았을까요? 마을책집 가까이로는 북적이는 밥집이나 옷집이나 술집이 많습니다. 우리는 밥옷집이라는 살림살이 곁에 책과 글을 어느 만큼 사랑스레 놓는 하루일까요.


  서울을 닮아가는 작은고장은 따분합니다. 스스로 서려는 작은고장이나 시골은 아름답습니다. 훌륭한 책을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글을 잘 여미어야 돋보이지 않습니다. 삼월에 피는 들꽃이 있고, 일찌감치 이월에 나는 들꽃이 있습니다. 느슨히 칠월이며 팔월에 깨어나는 들꽃이 있고, 까마중 같은 들풀은 십일월이나 십이월에까지 가만히 흰꽃을 피우곤 합니다.


  다 다르게 꽃이요, 마음으로 다다르는 꽃입니다. 다 다른 손길로 다 다르게 피어나는 책 한 자락을 곁에 둔다면, 누구나 다 다른 오늘을 새롭게 글꽃으로 여밉니다.


ㅅㄴㄹ


《서점원고지》(shys, shys, 2020.10.7.첫/2020.11.9.2벌)

《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아쿠쓰 다카시/김단비 옮김, 앨리스, 2021.11.5.)

《마법 걸린 부엉이》(이묘신, 브로콜리숲, 2019.9.27.)

《카레라이스의 모험》(모리에다 다카시/박성민 옮김, 눌와, 2019.1.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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