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 우리문고 4
쓰보이 사카에 지음, 서혜영 옮김 / 우리교육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어린이문학 비평 2023.3.25.

맑은책시렁 287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

 츠보이 사카에

 서혜영 옮김

 우리교육

 2003.3.25.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츠보이 사카에/서혜영 옮김, 우리교육, 2003)는 일본 우두머리가 저지른 싸움판에서 수수한 어른하고 아이가 어떤 멍울이며 생채기이며 눈물을 품고서 살아남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싸움을 누가 일으키는지 생각해야 하고, 싸움이 터지면 누가 길미를 챙기고 누가 죽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싸움은 아이가 안 일으킵니다. 마땅할 테지요? 모든 싸움은 ‘아이를 사랑으로 낳은 어버이’가 안 일으킵니다. 더없이 마땅하겠지요?


  모든 싸움은 ‘어른스럽지 않은 꼰대와 늙은이’가 일으킵니다. 잘 짚어야 합니다. ‘슬기롭게 빛나는 철이 든 사람 = 어른’입니다. 나이가 들거나 몸뚱이가 크기에 어른이지 않습니다. 싸움을 일으키는 놈이나 무리는 ‘어른이 아닌 꼰대와 늙은이’입니다.


  그래서 이쪽 나라 우두머리이든 저쪽 나라 우두머리이든, 나이가 들거나 몸뚱이는 컸어도 ‘어른스럽지 않은 마음이나 눈망울’이기에 총칼(전쟁무기)을 자꾸자꾸 만들어서 사람들을 종(노예)으로 길들여 놓습니다. 종살이에 길든 사람들은 철없고 바보스런 우두머리가 쥐어 주는 총칼을 받아들고서 한목소리로 ‘충성·애국’을 외칩니다.


  어느 싸움터에서도 우두머리가 앞장서지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우두머리·벼슬아치·글바치는 싸움터 뒷전에서 팔짱을 끼며 구경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면서 허수아비로 삼아요. 사람들을 ‘말(장기 말)’로 다룹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싸움을 속으로 파헤쳐서 민낯을 알자면 겉모습(나라이름·국적)이 아닌, ‘우두머리·벼슬아치·글바치’랑 ‘종살이’ 얼거리를 나란히 헤아리면서, 누가 어떤 꿍꿍이와 속셈이고 검은짓인가를 읽고서, 누가 어떻게 시달리고 짓밟히면서 죽음길로 치닫는가를 알아차릴 노릇입니다.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는 ‘역사’를 말하지 않습니다. 글을 쓴 츠보이 사카에 님은 ‘역사 아닌 살림살이’를 가만히 다루고 짚으며 말하려고 합니다. 어리석은 나라가 어진 나라로 거듭나려면 어떠해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짚으면서 밝힙니다. 어진 마음인 어른이 참한 마음인 아이들한테 물려줄 사랑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돌아보고 담아내려 합니다.


  모든 아이는 엄마아빠가 있기에 태어납니다. 모든 엄마아빠는 아이를 낳기에 이 이름을 받습니다. 어버이하고 아이는 한마음이자 한몸입니다. 둘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눈빛이기에 보금자리를 일굴 수 있습니다. 작게 짓는 보금자리에는 ‘스스로 짓는 사랑이 푸르게 우거지는 숲’이 깨어나고, 조촐히 어우러지는 보금자리가 모이는 마을에는 ‘두레랑 품앗이로 손을 맞잡는 즐거운 노래’가 흐릅니다.


  엄마아빠(어버이)한테 아이가 없다면, 총칼에 넋나간 우두머리·벼슬아치·글바치가 목숨을 빼앗았다는 뜻입니다. 아이한테 엄마아빠(어버이)가 없다면, 총칼에 얼빠진 우두머리·벼슬아치·글바치한테 사람들이 휘둘렸다는 뜻입니다.


  ‘일본·한국’이라는 나라이름에 숨은 몹쓸 우두머리·벼슬아치·글바치를 읽어야 합니다. ‘한국·일본’이라는 나라이름에 숨긴 고약한 민낯·검은셈·뒷짓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른스럽게 철들며 깨어나는 눈빛이어야 할 테지요. 여기에 아이답게 뛰놀며 노래하는 마음빛이어야 할 테고요.


  모든 빛은 오직 사랑으로 깨울 수 있습니다. 모든 삶은 오직 살림짓기로 이룰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랑은 오직 숲을 품어 풀꽃나무를 곁에 두는 넉넉한 몸짓으로 일으킬 수 있습니다. 모든 살림은 아이어른이 한마음이자 한사랑으로 나누고 누리는 작은 보금자리에서 저마다 스스로 지을 수 있습니다.


  ‘들보’는 집을 튼튼히 세우는 자리에 놓을 노릇입니다. 눈에 들보를 씌우지 말아요. 돌팔매로는 어떤 싸움도 끝장내지 못 합니다. 돌은 기둥을 받치는 자리에 놓고서 우리 보금자리를 든든히 돌볼 적에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이치로는, 오토라 아줌마가 어제 부친 엽서를 보고 벌써 와 주었구나 하고 기뻐서 활짝 웃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노릇인지 눈물이 먼저 나와, 그 자리에 선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40쪽)


“그럼, 아줌마도 이제 일 좀 할게.”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있자 광 안에서는 재봉틀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습니다. 아기 시로는 갑자기 모두가 욘아, 욘아 하고 불러대자 어리둥절해서 서 있었습니다. 시로는 어리둥절해 하는 아기 시로에게 다가가, “욘은, 너.” 하고 아기 시로의 코를 살짝 건드리고, “시로는, 나.” 하고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82쪽)


전쟁 중에는 나무를 다 뽑아내고 주식으로 먹는 곡식 농사를 지으라고 채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약해서 배 타는 것을 그만둔 시로의 아버지가 즐겨 손질하던 자몽밭이었기에, 할아버지는 고집스레 자몽나무를 지켰습니다. 전쟁 때문에 자몽 도둑이 많아져서 자몽이 익기 시작하면 밭의 문은 늘 부서져 있곤 했습니다. (154쪽)


농사를 짓지 않는 집 아이라도 이치로나 기쥬로처럼 각자 잘 아는 집으로 가서 일을 돕고 있을 터입니다. 떨어진 이삭을 줍는다든가, 묶어 놓은 다발을 한 곳에 모은다든가, 일곱 살 먹은 아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루야마 같은 먼 길에 등짐은 꽤 고생스럽습니다. (213쪽)


“아내가 죽고 없는 남편하고, 남편이 죽고 없는 아내하고, 엄마 없는 아이하고 아이 잃은 엄마하고, 그러니까 전쟁 탓에 쓰라린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서로 모여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단다. 치로야, 아줌마가 아버지하고 의논해 봐도 되겠니?” 오토라 아줌마 눈에 눈물이 그득히 고여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방울져 있었습니다. 이치로의 눈에도 그만 눈물이 맺혔습니다. (292쪽)


#母のない子と子のない母と #壺井榮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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