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코의 질문 - 개정판, 6학년 2학기 읽기 수록도서 책읽는 가족 3
손연자 지음, 김재홍 그림 / 푸른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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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어린이문학 비평 2023.3.25.

맑은책시렁 296


《마사코의 질문》

 손연자 글

 이은천 그림

 푸른책들

 1999.8.20.



  《마사코의 질문》(손연자, 이은천, 푸른책들, 1999)이 처음 나오던 무렵 여러모로 말이 많았습니다. 우리 발자취를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우리 발자취라기보다 미움만 잔뜩 담을 뿐 아니라, 총칼로 쳐들어온 일본을 나무라는 줄거리이면서 막상 ‘마사코의 질문’이나 ‘나의’나 ‘-에게로’처럼 일본말씨를 그대로 드러낸 대목이 얄궂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참말로 “마사코가 묻다”처럼 책이름을 붙여야 우리말답습니다. 총칼을 앞세운 일본 무리를 탓하면서 정작 일본말씨를 어린이책에 그대로 쓸 뿐 아니라, 스무 해가 지나도록 이런 책이름을 바로잡지 못 한다면, 어린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남길 만할까요? 24쪽을 보면 ‘야마·소라·호시’라는 일본말이 아닌 ‘산·하늘·별’이라는 우리말을 쓴다는 대목을 들려주는데, 요사이는 ‘산’을 더 쓴다고 하더라도, 지난날에는 ‘山’이 아닌 ‘메·갓·고개·재’ 같은 우리말을 썼습니다. ‘산나물’이 아닌 ‘멧나물’입니다.


  일본 우두머리가 처음부터 뉘우칠 줄 아는 마음이라면 총칼을 함부로 만들지도 않았을 테고, 이웃나라로 쳐들어오지 않았겠지요. 뉘우칠 줄 모르는 무리는 싸움판에서 무너지더라도 잘못을 빌지 않습니다. 나라 곳곳에서 터지는 숱한 주먹질(폭력)을 봐도 쉽게 알 만합니다. 주먹을 휘두른 놈은 ‘가정폭력·학교폭력·사회폭력’ 어디에서고 참말로 안 뉘우칩니다. 잘못한 값을 달게 치르더라도 그들 주먹꾼(폭력배)이 참말로 뉘우치면서 거듭났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마사코의 질문》도 어느 만큼 이 대목을 헤아린 듯이 168쪽에서 살짝 멧새 목소리를 옮겨서 “새는 남을 미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움이 가득해서 날지 못하는 새는 자유가 없다”고 밝히기도 하지만, 이렇게 ‘미움 아닌 사랑’으로 멍울과 생채기를 어루만지는 줄거리가 아닌, ‘미우니 미워하겠다’는 줄거리가 가득한 《마사코의 질문》이에요. 201쪽을 보아도 엿볼 수 있듯 “그래도 친구하고는 사이좋게 지내야 해.”처럼 말만 해서는 ‘사이좋게’가 무엇인지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난하던 지난날 아이들은 ‘내 것’이라고 삼을 만한 것이 없기 일쑤였어요. 붓도 종이도 보따리도 없이 맨몸으로 배움터를 오간 아이들이 수두룩합니다. 동무 것을 함부로 건드릴 만한 삶터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틀림없이 총칼을 앞세워서 이 땅을 짓밟았고, 숱한 일본사람은 이 나라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들볶았습니다. 자, 그러면 그때 이 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우리나라 우두머리하고 벼슬아치는 뭘 했지요? 이 나라 글쟁이는 뭘 했나요? 몇 사람을 빼고는 죄다 일본바라기이지 않았는지요? 일본바라기를 했던 부끄러운 티를 뉘우친 이가 몇몇 있었으나, 거의 모든 우두머리·벼슬아치·글쟁이는 안 뉘우친 채 돈·이름·힘을 움켜쥐고서 오늘날까지 거들먹거리지 않는가요?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이지만, 막상 일본바라기를 뉘우친 사람들조차 그저 뭉뚱그려서 나무라기만 하지 않는지요? 더구나 오늘날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는가요? 오늘날 우리나라는 지난날 일본 못지않게 총칼(전쟁무기)을 끝없이 잔뜩 만들어서 내다팔지 않는가요? 총칼을 만들어서 내다파는 우리 모습은 자랑스러운가요? 아니면 창피하거나 부끄러운가요?


  아이들은 어른이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하지는 않습니다. 어질고 참한 사랑으로 속삭이면서 먼저 보여주는 아름다운 몸짓이라면 누가 안 시켜도 아이들은 즐겁게 물려받거나 새롭게 지핍니다. 이와 달리 억지로 시키거나 나이로 밀어붙이거나 힘으로 누르려 하면, 아이들은 그만 앓거나 다치거나 멍들며 허수아비나 꼭두각시가 되거나 죽어버리기까지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린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 ‘꼰대도 아니고 늙은이도 아닌, 참하고 착한 어른’으로 설 만할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잘잘못을 안 따져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잘잘못을 따진다면 왜 따져야 하는가를 되새기고, 어떻게 따져야 하는가를 짚고, 이 잘잘못을 따진 길을 앞으로 어떻게 추스를 적에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면서 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어우러지면서 푸르게 숲으로 빛나는가’를 차근차근 생각할 일이라고 봅니다.


  “넌 잘못했으니까 나빠!” 하고 말하기란 쉽겠지요. 그러나 이런 미움 가득한 말은 언제까지나 싸움(전쟁)만 끌어당기고 심습니다. 미움으로 하는 앙갚음은 다른 미움을 끌어당기고 심으니, 끝없이 싸움판을 되풀이하다가, 나중에는 누가 먼저 때렸느냐로 다투기까지 합니다. 참말로 아이들한테 미움씨앗만 심는 글을 써야겠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어른’이 맞습니까? 우리는 ‘꼰대나 늙은이’ 아닙니까?


ㅅㄴㄹ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를 거다만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란다. 승우야, 넌 나라와 민족의 뿌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 … 승우는 엄마가 쓰신 꽃글을 보았습니다. ‘야마’, ‘소라’, ‘호시’로 불렀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말들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산’과 ‘하늘’과 ‘별’로 불리자 그 말들은 두렷두렷 살아나 승우에게로 왔습니다. (22, 24쪽)


“아니! 미움은 서로를 아프게 하니까 우리 새들은 남을 미워하지 않아. 우린 말야, 마음이 몸 안에 가득 차면 무거워 날지를 못해. 날지 못하는 새는 자유가 없단다. 새나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야.” “그래도 난 미워. 나를 조센징으로 낳은 아빠도 엄마도 미워.” 고개를 번쩍 든 난 산에다 대고 와라락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다 미워어!” 그 소리에 놀란 듯 나의 산새는 바람을 가르며 숲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168쪽)


“뭐 내가 한 짓을 절대로 안 잊겠다나. 유키짱은 바보 얼간이야.” “마사짱, 그런 말 하면 못 써. 그래도 친구하고는 사이좋게 지내야 해.” “자꾸 내 물건에 손을 대고 얄밉게 구니까 화가 나서 그랬지 뭐.” (20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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