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좋은생각>에서 청탁이 들어와서 써 보낸 글입니다.
마감날에 겨우 맞추었네요 ^^;;;;;


― 내 삶에 책 하나 : 마르지 않는 삶을 담은 책


 제가 일하는 책상에는 늘 100∼200권에 이르는 책이 얹히거나 꽂혀 있습니다. 책상 둘레에도 비슷한 숫자로 쌓여 있습니다. 그날그날 제 살림집으로 받아들인 책이 하나둘 모이면서 탑을 이룹니다. 한 번 집어들고 끝까지 쉬지 않고 읽어내리는 책도 있지만, 제 얕은 마음을 휘젓거나 다독여 주는 줄거리를 읽었을 때면 한동안 책을 덮습니다. 지금 막 깨우친 이야기를 차근차근 곰삭이고 싶어서요. 누런 쌀밥을 백 번쯤 우물우물 씹어서 넘기듯, 마음에 밥이 되는 책을 만났을 때는 서두르지 않고 읽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한 끼니에 열 그릇이나 스무 그릇을 비울 수 없듯이, 제 모자란 깜냥을 일깨우는 책이라면 하루아침에 읽을 수 있으랴 싶습니다.

 우리들이 만나는 책은 ‘그 책을 짓거나 엮은 사람이 짧으면 한두 해, 길면 열이나 스무 해도 넘는 세월을 바쳐서 만든’ 책이에요. 그래, 열 해라는 세월을 한두 시간만에 후루룩 넘겨버릴 수는 없다고도 느껴요. 이러다 보니 책상맡에는 쌓이느니 책이요, 다 읽고 나서도 좀처럼 ‘따로 마련한 책꽂이’로 옮겨 꽂지 못합니다. 다 읽었어도 더 읽고 싶고, 여러 차례 읽었어도 틈틈이 다시 들추고 싶어서.

 그러나 책상맡에 놓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들춰보는 책이 있습니다. 잡지 《샘이 깊은 물》. 1984년에 첫호를 낸 《샘이 깊은 물》은 ‘아줌마 독자’와 ‘아가씨 독자’한테 눈길을 맞추어 우리 사는 세상 이야기를 조곤조곤 돌아볼 수 있게 이끌어 줍니다. 폐간되어 새책방에서 사라지고, 도서관에서도 갖추어 놓지 않는 잡지인 터라,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한 권 두 권 틈틈이 사서 읽습니다. 책꽂이에서 1987년 10월에 나온 《샘이 깊은 물》을 꺼내어 봅니다. 벌써 스무 해나 지나간 옛글이라 할 테지만, 세월을 건너뛰는 슬기로움을 보여줍니다. 철지나거나 묵었으면 ‘이제는 돌아볼 값어치’가 없다고 여기는 요즘 세상이건만, 이 잡지는 철이 지나고 묵을수록 깊은 된장맛을 냅니다. 잡지가 나오던 지난날에는 지난날대로 세상을 앞서 읽던 줄거리를 담았고, 잡지가 자취를 감춘 오늘날에는 지금 우리 모습과 삶을 가만히 되새기고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잡지 이름처럼, 샘이 깊어서 언제까지나 마르지 않고 시원하게 감겨들까요. 섣부른 세상 물결에 휩쓸리지 말되 세상일에 팔짱 끼고 나 몰라라 하지 않도록, 무엇이든 빨리빨리 외치는 세상 흐름에 끄달리지 말되 자기 줏대와 눈길을 추스를 수 있도록, 조용히 외치고 말이 아닌 온몸으로 파고드는, 내 삶에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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