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문학의 재발견
김상욱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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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3.12.

인문책시렁 291


《어린이문학의 재발견》

 김상욱

 창비

 2006.11.15.



  《어린이문학의 재발견》(김상욱, 창비, 2006)은 ‘창비사단’이라 일컫는 무리가 드러내는 속마음인가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창비사단’은 우리나라 어린이책을 그들이 이끌거나 퍼뜨리거나 가르치거나 키운다고 하는 자랑이 꽤 드높습니다. 어른책이건 어린이책이건 ‘몇 자락을 팔았는가?’로만 바라본다면 ‘창비사단’이 읊는 목소리가 어느 만큼 들어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비사단’에서 북돋우거나 추켜세우는 어린이책을 보면 종잡을 길이 없습니다. 그저 많이 팔리는 책이고, 그들 울타리에 깃든 글꾼이라면 다 좋기만 하다고 여기는 물결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여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문학 비평’이라고 하면 어린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여미기 일쑤입니다. 어린이는 그저 어른이 내려보내는 책(문학)만 읽으면 되기 때문일까요? 어린이가 스스로 어린이책을 말할(비평할) 까닭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2020년대로 접어든 배움책(교과서)은 이제 배움책이 아니라 ‘웹툰 캐릭터 도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린배움터 배움책에 ‘창비사단’을 비롯한 곳에서 우르르 엮고 펴내어 팔아치웁니다.


  배움터에 다니는 어린이는 이 어린이대로 배움책 아닌 ‘웹툰 캐릭터 도감’을 펼칩니다. 배움책 옆에 두는 어린이책은 ‘학습 보조도구’ 노릇을 하는 책이거나 심심풀이 노릇을 하거나 ‘머잖아 불수렁(입시지옥)에 쓰일 만한 인문책’을 조금 쉽게 풀어낸 책이기 일쑤입니다. 요즈음 어린이책은 ‘어린이 현실세계’를 그린다면서 ‘학교·학원·게임·다양성 존중·이주노동자·학교폭력·젠더갈등·이성친구……’라는 틀에 뻔하게 얽혀드는 줄거리에서 오락가락한다고 느낍니다. 꿈(상상력)을 그리는 어린이책이 요즈음 몇이나 있다고 여길 만할까요? 좋아함(연애)을 다루는 책은 수두룩하지만, ‘좋아함이 아닌’ ‘사랑’이 무엇인지 찬찬히 짚을 줄 아는 책은 있기는 있을까요?


  어린이 자리에 서지 않을 뿐더러, 어린이 곁에 없이 허울(대학교수·비평가·작가)만 쓰고 싶은 분들은 《어린이문학의 재발견》 같은 책을 쓰고 읽는다고 느낍니다. 어린이 자리에 서거나, 어린이 곁에 있다면, “숲한테서 얻은 종이로 아름책을 여미지 못하여 잘못했구나” 하고 먼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릴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참말로 ‘어른’이라면, 나이만 잡숫는 늙은이가 아닌, 어질고 슬기로워 이슬받이로 나아가는 ‘어른’이라면, 오늘날 온갖 자질구레한 쓰레기로 망가뜨린 어린이책 민낯부터 엎드려 빌고 눈물로 씻을 일이 아닐까요?


  오늘날에는 ‘일하는 아이들’에 앞서 ‘일하는 어른들’부터 잘 안 보입니다. 돈벌이를 해야 ‘일’이지 않습니다. ‘일’이란 우리말은 ‘일다’가 바탕입니다. 스스로 일으키면서 삶을 빛내는 몸짓이 ‘일’입니다. 집일을 할 줄 아는 어른이 요새 얼마나 있나요? 집일을 넘어 마을일·품앗이를 헤아리는 어른이 얼마나 있지요? 아이들한테서 소꿉놀이랑 빈터랑 숨쉴 풀밭을 빼앗은 수렁에 잠긴 ‘어른 아닌 늙은이’들이 온누리를 망가뜨리는 판에, 어린이책이 이러쿵저러쿵 비평을 해본들 참으로 덧없는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습니다.


ㅅㄴㄹ


특히 동화는 자본의 시대와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문학 장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자본의 시대와 동화는 불화가 아닌 깊은 친연성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는 기묘한 상생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가? (16쪽)


그러나 상상력이란 ‘기발함’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판타지의 근간을 이루는 상상력이란 언제나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투영해 보기 위한 장치이지, 현실에서부터 자유분방하게 멀어져도 좋은 착상의 기발함이 아닌 것이다. (76쪽)


고통 자체를 형상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던 역사적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다루었다는 것만으로 높이 평가받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134쪽)


이 동시는 하나로 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질서로부터 아이들의 삶이 변모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모든 것들이 하나로 원환을 이룬 채, 아름다운 한 세상의 풍경을 그려 보이고 있다. 이 동시 한 편으로 이원수의 동시는 깊은 사색과 성찰을 어떻게 동시 속에서 풀어놓을 수 있는지 그 전범을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 어떤 동시로 달성하지 못한 정교함과 풍부함, 깊이와 폭을 한꺼번에 입증하고 있다. (296쪽)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아이들에게는 더이상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구체적인 노동이 없다. 어렵게 발견한 것은 다만 이오덕의 길일 뿐, 그의 뒤켠에 남겨진 우리의 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아이들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새로움은 갑자기 솟구쳐나오지도, 떨어져내리지도 않는다. 지금껏 힘겹게 이어온 길을 벗어날 수 없다. (34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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