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7 길에서
어디를 가더라도 길에서 그야말로 한참 보냅니다. 전남 고흥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 마을책집으로 가려 해도 길에서 두어 시간을 들이고, 서울라면 예닐곱 시간을, 부산·부천·인천·수원이라면 일고여덟 시간을, 대구라면 여덟아홉 시간을, 광주라면 너덧 시간을, 장흥·벌교라면 서너 시간을, 진주·전주라면 대여섯 시간을, 강릉·구미로 갈 적에는 열한 시간을, 영양으로 갈 적에는 열두어 시간을, 포항·음성·원주·청주로 갈 적에는 열 시간을, 넉넉히 길에서 씁니다. 큰고장에서 산다면 길에서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하루를 쏟지는 않으리라 봅니다만, 시골에서 살기에 여느 때에 느긋하게 풀꽃나무하고 해바람비를 맞이하고 누려요. 예전에는 길에서 책만 읽었으나, 아이들이 곁에 오고 나서는 아이들한테 주고 이웃님한테 건넬 노래꽃(동시)을 쓰고, 요새는 꽃글(동화)을 함께 씁니다. 뭐, 그렇지요. 고흥서 서울을 다녀오자면 길에서 열서너 시간을 보내는데, 이동안 낮잠도 누리고 책도 읽고 노래도 듣고 글도 쓰고 생각에 잠겨요. 여느 때에 하지 못한 손전화 쪽글도 이때에 몰아서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오가며 들꽃 곁에 쪼그려앉거나 나무 곁에 서서 소근소근 말을 걸고, 두 팔을 하늘로 뻗어 바람을 주무르기도 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