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넋 / 숲노래 우리말
곁말 98 바람꽃
열 살 언저리에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적 있습니다. 쉽게 앓고 힘이 여리고 언니하고 대면 못하는 투성이에 날마다 꾸중을 듣다 보니, “난 아무것도 못 하나 봐. 그렇지만 나처럼 못 하는 아이도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하늘을 날면 좋을 텐데.” 하고 혼자서 생각하는 나날이었어요. 요즈음은 바람종이(연鳶)를 하늘에 띄워 노는 아이가 드물 텐데, 제가 어릴 적에는 바람이 센 날이면 골목이며 빈터마다 바람종이를 챙겨서 나온 아이가 많았어요. 회오리바람이 씽씽 부는 날 어머니 심부름으로 바깥을 다녀오다가 이 바람이 저를 와락 품고는 하늘로 휙 올리더군요. “아!” 발이 땅에서 가볍게 떨어지면서 하늘로 오르니 대단히 신났는데, 덜컥 두렵더군요. “날았다가 어떻게 내려오지? 안 떨어지나?” 이때 회오리바람은 “두렵니? 두려우면 다시 내릴게.” 하고 속삭이더니 천천히 땅바닥으로 내려주었어요. 풀꽃나무는 바람을 반기면서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우리는 즐겁게 바람을 타면서 일을 하거나 놀이를 찾습니다. 그리고 바람을 타는 새처럼 홀가분히 온누리를 누비는 사람이 있어요. 바람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바람꽃을 타다가 바람꽃 같은 동무를 만나서 함께 바람놀이를 즐깁니다. 이 바람은 모두를 보드라이 살리는 기운입니다.
바람꽃 (바람 + 꽃) : 1. 꽃가루를 바람으로 옮겨서 받는 꽃. 수술에 있는 꽃가루를 바람으로 옮겨서 암술로 받는 꽃. (= 바람받이꽃) 2. 움직이거나 흐르거나 일어나거나 생기도록 하는 기운. (= 바람) 3. 어느 곳에 오래 머무르거나 뿌리내리지 않고서, 마치 바람처럼 가볍게 어디로든 다니면서 삶·살림·사랑을 짓는 들꽃 같은 사람. (= 바람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