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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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2023.3.4.

숲책 읽기 191


《식물학자의 노트》

 신혜우

 김영사

 2021.4.27.



  《식물학자의 노트》(신혜우, 김영사, 2021)는 겉에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라고 작은이름을 적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풀꽃나무가 들려준 이야기’를 참말로 듣고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는지 알쏭했습니다. 도무지 풀꽃나무하고 이야기를 안 한 채, 아니 풀꽃나무가 들려준 마음이나 말을 안 들은 채 쓴 책이라고 느끼다가 265쪽에 이르러 수수께끼를 풀었어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분은 “결국 이런 과학적 원리를 보면 식물은 역시나 마음도, 마음이 생길 수 있는 뇌도 없고, 우리 인간과 교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게 됩니다(265쪽).” 하고 끝자락에서야 밝힙니다. 그러고 보면, 첫머리에 “식물 그림은 … 길고 고된 과정이 있습니다(5쪽).” 하고 말하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마음을 읽지 않는 그림이니 길고 고될밖에 더 있겠습니까? 풀꽃나무한테 마음이 없다고 ‘과학’으로 그렇게 밝혔다고 버젓이 말하는데, 이분이 담은 글·그림에 ‘마음’이 깃들지 않았다고 느낄밖에 없어요.


  지은이는 “문헌 조사와 오랜 관찰, 많은 표본을 살펴보는(5쪽)” 데에는 그토록 품을 들였으되, 막상 풀꽃나무를 ‘마음’으로 만나려고는 안 했구나 싶어요. ‘말린 풀꽃’을 오래오래 지켜보면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어린이가 풀꽃나무를 지켜보면서 담는 그림은 오롯이 마음으로 만나고 느끼고 본 결을 옮깁니다. 어린이는 어떠한 ‘문헌·표본 조사’를 안 하고, 눈앞에서 마주하는 풀꽃나무만 바라보면서 그림으로 담아요.


  마땅합니다만, 온누리 풀꽃나무는 다 달라요. 그리고, 온누리 풀꽃나무는 다 같습니다. 더 많은 풀꽃나무를 들여다보아야 풀꽃나무를 제대로 알지 않습니다. 눈앞에 있는, 눈앞에서 바람에 살랑거리는, 눈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웃고 노래하는, 눈앞에서 싱그러이 살아숨쉬는 풀꽃나무를 ‘나도 똑같이 숨붙이’라는 마음을 틔워서 다가가면, 모든 풀꽃나무는 우리한테 마음을 열고서 스며들어요.


  마음읽기가 어렵다고요? 정 마음읽기가 어려우면 풀잎이나 나뭇잎을 하나 톡 따서 먹으면 돼요. 풀줄기랑 풀뿌리를 먹어 보고, 나무줄기하고 나무뿌리도 먹어 보면 됩니다. 날로 먹기 어려우면 끓는물에 우려서 먹을 수 있고, 말리거나 덖은 다음에 뜨거운물에 우려서 마실 수 있어요. 풀꽃나무를 다룬 모든 글(책·문헌)은 이렇게 마음읽기로 알아낸 이야기에다가 스스로 먹고 마시고 누린 살림을 갈무리해서 담습니다. 그러니까 식물도감이나 표본이 아닌, 눈앞에 있는 바로 이 싱그러이 살아서 춤추고 노래하는 풀 한 포기에 꽃 한 송이에 나무 한 그루만 마음으로 사귀면, 글도 그림도 끝없이 쏟아지게 마련입니다.


  《식물학자의 노트》 지은이는 다시 태어나도 ‘식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히는데, 주검(죽은 몸)만 들여다보는 길이 식물학자라면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고사리’라는 이름 하나는 ‘식물학자’가 아닌, 들살림을 짓고 숲살림을 사랑하는 수수한 시골사람이 어느 날 문득 골골샅샅에서 저마다 다른 말씨(사투리)로 지었습니다. 마음으로 만나기에 이름을 짓고, 살림으로 먹고 나누고 누렸기에 쓰임새를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로 이어와 오늘날 누구나 누리지요.


ㅅㄴㄹ


식물 그림은 그리는 식물 종에 대해 깊이 조사하고 전 생애를 관찰하여 최소 1년에 걸쳐 제작됩니다. 그릴 때는 문헌 조사와 오랜 관찰, 많은 표본을 살펴보는 길고 고된 과정이 있습니다. (8쪽)


영국 식물학자는 철로 주변뿐만 아니라 식물원 근처 공원에도 고사리가 자라는데, 봄마다 고사리를 꺾는 아시아인이 많다고 했습니다. 아시아 음식을 잘 알지 못하는 영국인들은 아시아인들이 고사리를 어디에 쓰는지 매우 궁금해 한다고 합니다. (51쪽)


결국 이런 과학적 원리를 보면 식물은 역시나 마음도, 마음이 생길 수 있는 뇌도 없고, 우리 인간과 교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게 됩니다. (26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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