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피의 다락방
베치 바이어스 지음, 김재영 옮김, 오승민 그림 / 사계절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잡지 <북새통>에서 "이달에 나온 좋은 어린이책" 추천을 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추천하는 후보도서 다섯 권 가운데 하나를 뽑아서 쓴 소개글입니다. 다섯 권 모두 내키지 않았지만, 그나마 이 책에 별 셋을 주면서 추천을 해 봅니다..............

 

- 책이름 : 앨피의 다락방
- 글쓴이 : 베치 바이어스
- 옮긴이 : 김재영 / 그린이 : 오승민
- 펴낸곳 : 사계절(2007.6.8.)
- 책값 : 7500원


― 만화를 그리고 싶으면 다락방에서 내려와야
: 《앨피의 다락방》을 읽으면서



 - 1 -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 삶이 즐겁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못하는 것 하나 없고, 꿈꾸는 일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면, 이렇게 누릴 수 있는 삶이 자기한테 가장 신날까요. 나한테 재미난 삶과, 나 아닌 사람들이 둘레에 어우러져 있는 삶은 어떻게 다를까요.

 자기가 하고픈 말, 이루고픈 꿈, 좋아하는 무엇을 자기 식구를 비롯해서 동무나 학교 교사나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지만, 어느 한 번도 이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다락방 아이는, 늘 마음문을 닫아걸게 됩니다. 아무도 만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자기 둘레 사람들이 자기한테 아무 이야기도 안 들어준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는 자기 둘레 사람들 이야기를 하나도 안 들어주고 있음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또한, 이 아이한테 어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들도 자기 마음에 드리운 그늘과 생채기를 말하고 싶어하면서도, 바로 자기 곁에 있는 식구들한테 드리운 그늘과 생채기에는 나 몰라라입니다. 다락방 아이 어머니가 읊는 “뭐든 얘기해 보라니까. 텔레비전이랑 할아버지 말고는 친구도 없이 하루 종일 집 안에 앉아 있는 엄마 좀 생각해 줘. 무슨 일 없었니?(39쪽)” 같은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참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어떤 일로 걱정과 근심이 쌓여 아픔과 외로움으로 커 가는지 모릅니다. 자기 아버지가 어떤 일로 고단함과 힘겨움으로 겨우 목숨만 잇는 줄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딸내미한테도 “네 오빠 도와주느라 네 소중한 돈을 눈곱만큼 썼지. 난 오빠를 도와줬다고 틀림없이 네가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오빠를 위해 그 돈을 쓴 걸 아직도 아까워하고 있구나.(95쪽)” 하면서 비아냥거립니다. 자기가 낳은 아이들 마음조차 헤아리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자기 아이들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혼자서 집안살림 꾸리느라 돈벌고 밥하고(밥은 딸내미한테 거의 맡기지만)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사느라 마음이 메말라 버렸고 뭉쳐 버렸다고 해야겠지요.

 어쩌면, 다락방 아이부터 이 아이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동무들과 교사들은 ‘자기가 보고픈 것만 보고’, ‘자기 둘레 사람들 삶과 생각과 마음’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구나 싶어요. 자기 마음에 깊게 패인 생채기는 볼 줄 알고 느낄 줄 알지만, 자기 둘레 사람들 마음에 ‘자기 마음에 패인 생채기만큼’, 또는 자기 마음에 패인 생채기보다 더 깊이 난 생채기를 볼 줄 모르고, 처음부터 들여다볼 마음이 없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다락방 아이는 한 가지를 압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135쪽).”는 걸. 그렇지만, 이 다음은 모릅니다. 다락방 아이 누나가 말하는 “앨피는 스스로 내려와야 해요. 꼭 그래야 해요.(111쪽)”를 모릅니다. 하지만, 다락방 아이 누나가 그러했듯이, 이 아이도 아직은 “정말로 상처받은 곳은 손가락으로 건드릴 수도 없을 만큼 아픈 법이다.(154쪽)”라는 참뜻을 헤아릴 날을 맞이하겠지요. 그러니, 다락방을 지켜내려고 꼼짝 않고 버티고 있다가 스스로 마음을 풀고 다락방에서 내려와 말을 했을 테며, 다락방 아이 자기뿐 아니라 자기 둘레 사람들 마음에 새겨진 생채기를, 또 이 생채기를 아물게 하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보도록 하는 자기 길을 찾을 수 있겠지요.

 다락방 아이, 그리고 이 작품을 쓴 사람조차 미처 몰랐을 수 있는 “어쨌거나 너도 날 도와주지 않을 거잖아.(96쪽)”라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이 말은 다락방 아이 어머니가 다락방 아이한테 한 말입니다.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도와주지 못할 뿐 아니라 도와줄 마음도 없는’ 가운데 ‘아이가 자기를 도와주기’ 바랍니다. 참으로 철없는 어머니이지만, 이 어머니네 아버지인 다락방 아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락방 아이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다면, 다락방 아이네 누나 한 사람은 다릅니다. 이야기책에서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곁다리로 나타나지만, 다락방 아이에 앞서 ‘다락방 아이가 느낀 그늘과 생채기’를 먼저 느꼈고, 이를 식구들과 동무들과 이웃들 사이에서 슬기롭게 풀어내며 살아갈 길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서 곰삭이고 있거든요. 다락방 아이는 이런 자기 누나를 오래도록 ‘못 보며’ 살다가, 다락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누나라는 사람이 자기 곁에 있음을, 자기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구멍이 난 채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다락방 아이네 누나가 “너하고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기 걸 가져 본 적이 없어. 오빠가 싫어했던 거라면 몰라도.(84쪽)” 같은 말을 들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저, 자기네 학교 수학교사가, 자기가 그린 만화를 보여주었을 때 “이제는 수업이 끝난 다음에만 만화를 그리도록 해라.(70쪽)” 하는 말에 생채기를 받고,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엘피가 바라는 다락방 인생이었다.(139쪽)”와 같이 살아가려 할 뿐이었습니다.


 - 2 -

 동화책 《앨피의 다락방》을 덮으면서, 오늘날 아이들이 마음으로 앓고 있는 아픔이 누구한테나 참 클 수밖에 없음을, 그렇지만 그 아픔이 자기한테만 있는 줄 알고 자기 둘레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안 보려고 하면 ‘세상과 담을 쌓’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함을 살며시 느꼈습니다. 《앨피의 다락방》에 나오는 다락방 아이 엘피는, 앨피 자기처럼 세상을 더 살고 싶지 않고 사람도 더 만나고 싶지 않은 아픔을 이겨내고 제 나름대로 꿋꿋이 살아가는 누이가 있은 덕분에, 다락방을 지켜내고 다락방에서 스스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다락방 아이 엘피는 자기 누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자기 누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한 가지씩 생채기를 안고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자기네 학교 수학교사와 오랜 짝꿍 ‘트리’라는 아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자기를 놀려대는 이웃집 쌍둥이 아이들이 자기네 집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까요? 자기한테 끔찍이 싫은 부버 형과 새언니가 어떻게 세상과 부대끼고 있는지 헤아릴 수 있을까요.

 작품 바깥으로 나와서 이 책을 살피면, 무엇보다도 번역이 무척 깔끔하고 훌륭합니다. 군더더기나 쓸데없는 말이 하나도 안 보인다고 할 만큼 빈틈이 없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어렵거나 딱딱하게 굳은 말, 일본 말투나 어설픈 서양 말투에 젖은 잘못된 말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이사이 스며든 그림 또한 ‘스며든다’는 말마따나 참 좋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그린 그림은 너무 틀에 박혀서, 두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며 다락방 아이와 어우러지는지, 또 다락방 아이네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합니다. 다락방 아이 모습은 잘 담아냈지만. 다락방 아이가 ‘자기 둘레 사람들, 식구부터 동무와 이웃 모두를 제대로 살피고 있지 못한 것처럼, 이 동화책에 실린 사잇그림도 다락방 아이를 빼놓고 다른 사람들 마음과 생김과 삶을 못 헤아리며 그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일부러 이렇게 그렸는지 모르지요. 다락방 아이가 세상을 보는 그 눈길만큼만.

 그리고, 책이름을 누름글씨로 새겨넣었던데, 이 책 꾸밈새를 살펴보았을 때, 누름글씨를 해서 제작단가를 높이게 하는 그런 일을 굳이 했어야 하나 싶더군요. ‘앨피의 다락방’ 여섯 글자와 그림 하나를 누름글씨로 안 했어도 느낌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누름글씨를 안 했으면, 책값이 7500원이 아니라 7000원이 될 수 있었어요. 초등학교 높은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좋도록 편집을 잘하기는 했지만, 겉그림 누름글씨는 ‘치명타’라고 할 수 있는 아쉬움입니다. 다락방 아이 앨피가 세상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던 것처럼, 이 책을 우리 말로 옮겨낸 출판사에서 우리네 아이들을 좀더 굽어살피지 못한 아쉬움이 묻어난다고 할까요. 깔끔한 번역글과 짜임새를 가려 버리는 이런 아쉬움을, 다음번 책에서는 떨쳐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별 다섯 만점에서, 별 셋을 주겠습니다. (4340.7.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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