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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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2.26.

인문책시렁 283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김광규 옮김

 문장

 1978.4.25.첫/1980.4.10.8벌



  2001년에 새로 나온 판인 《책상은 책상이다》(페터 빅셀/이용숙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1)가 있으나 굳이 1978년에 처음 나온 판인 《책상은 책상이다》(페터 빅셀/김광규 옮김, 문장, 1978)를 되읽어 봅니다. 1978년 옮김말이 2001년 옮김말보다 낫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1978년이라는 시커멓고 캄캄하고 아득한 구렁텅이 같던 지난날 이 책을 애써 우리말로 옮긴 뜻을 어림하면서 옛판으로 천천히 되읽어 봅니다.


  1978년하고 2001년을 나란히 놓고 보면 까마득히 다른 두 때입니다. 1978년에도 2001년에도 고린틀(남성 가부장권력)은 드셌습니다. 2001년 무렵만 해도 돌이(남성)가 부엌일을 하면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무렵에 순이(여성)가 부엌일을 안 하면 나란히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2001년이나 1978년이나 이 고린틀을 갈아엎기를 바라는 눈길은 늘 도사렸고, 목소리를 내었고,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스위스사람한테 스위스란 어떤 나라일까요? 한겨레한테 한나라(한국)는 어떤 나라일까요? 이름이란 무엇이요 말이란 무엇이며 마음이란 무엇인가 하고 처음부터 다시 읽고 새기려는 숨결이 《책상은 책상이다》에 흐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무엇인지 알기는 할까요? 우리는 ‘우리말’이 무엇인지 생각이나 할까요?


  한자로 ‘韓國’처럼 적는 이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어림이나 하는가요? 훈민정음을 여민 세종 임금이라지만, 정작 그무렵부터 조선 500해에 걸쳐 다들 중국말(한문)로 글을 쓰고 말을 하던 나라(정부)인 줄 느끼기나 하는지요? 아니,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을 여미었다지만, 흙을 만지던 ‘수수한 사람들(백성)’은 배움터(서당)에 아이를 넣을 수 없었고, 붓먹벼루종이를 건드릴 수 없었고, 훈민정음은커녕 한자조차 익힐 수 없었습니다. 이런 속낯을 차근차근 새기면서 발자취(역사)에 숨은 밑뜻을 제대로 헤아리려는 사람은 이 나라에 얼마나 있을까요?


  책은 그냥그냥 읽어도 됩니다. 배움터(학교)는 그냥그냥 다녀도 됩니다. 일터(회사)는 그냥그냥 깃들어도 됩니다. 서울(도시)에 그냥그냥 살아도 됩니다. 그저 그냥그냥 하기에 그냥그냥 흘러가거나 지나갈 뿐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그냥 보내지 않고 차근차근 짚을 수 있어야 비로소 스스로 생각씨앗을 마음에 심을 수 있고, 생각씨앗 한 톨을 심은 때부터 ‘사람’이라는 ‘삶’으로 깨어납니다.


  생각을 하기에 사람입니다. 생각을 안 하기에 시키는 대로 따라갑니다. 생각을 하기에 스스로 그리고 짓고 누리고 나눕니다. 생각을 안 하기에 스스로 안 그리고 남이 해놓은 것을 사들이고 쓰다가 버립니다.


ㅅㄴㄹ


그러므로 여행은 아직 시작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책상으로 돌아와 종이를 한 장 꺼내어 이렇게 썼다. “나는 커다란 사닥다리가 한 개 필요하다.” 그러자 그 집 뒤에서부터 숲이 시작되고 그가 똑바로 갈 길 가운데 나무가 몇 그루 서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12쪽)


“달라져야만 한다. 달라져야만 해!” 그에게는 괘종시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의 손은 아파지기 시작했고 목소리는 쉬어버렸다. 그러자 다시 괘종시계의 소리가 들려왔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3쪽)


그리고 나서 그는 계산한 것을 찢어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저녁때면 연구가 또 성공하지 못했으므로 그는 짜증이 나고 기분이 나빴다. (43쪽)


간수는 혼잣말로 나지막히 중얼거리고는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맞습니다.” 하고 사내가 말했다. 아마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들키지 않았어야 옳았다. (80쪽)


신병(新兵) 훈련소에서 스위스인은 성인이 된다. 신병 교육은 누구에게나 유익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신병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선 일생을 두고 그런 표시가 드러난다. 그리하여 신병 훈련소는 17주간 계속되는 남성 의식(儀式) 내지는 성인 의식으로 되어버렸다. (134쪽)


계속해서 감격해야 할 필요 없이 나는 여기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관광객으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의 관광명소를 보고 경탄하지 않아도 된다. 푀엔이 부는 날 알프스산맥의 장관을 못 본 체해도 된다. (138쪽)


#Kindergeschichten #PeterBichsel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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