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김한종.김승미.박선경 지음, 이시누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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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2.23.

맑은책시렁 292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김한종·김승미·박선경 글

 이시누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22.12.30.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김한종·김승미·박선경, 책과함께어린이, 2022)를 읽으면 ‘글(기록)’이 무엇인가 하고 어린이한테 가만히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른바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모든 이야기는 으레 ‘글’이랑 ‘남은것(유물·유적)’을 바탕으로 살핍니다만, 아이를 낳아 수수하게 살아오던 자취는 ‘글’로도 ‘남은것’으로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전형필 님이 목돈을 들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건사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습니다만, 임금이나 벼슬아치가 아닌 수수한 사람들이 쓰던 호미나 낫을 건사한 일은 얼마나 될까요? 키나 도리깨나 베틀이나 물레는 얼마나 건사할까요? 아니, 호미나 낫이나 키나 도리깨나 베틀을 건사하더라도, 이 살림살이를 어떻게 다루거나 쓰는가를 얼마나 알까요?


  글바치는 “낫 들고 ㄱ글씨 모른다”고 읊지만, 흙지기는 “낫 쥐고 풀을 벨 뿐”입니다. 오늘날 숱한 ‘역사책·역사 이야기’는 ‘낫 들고 읽는 ㄱ글씨’에 머무느라 ‘낫 쥐고 풀을 베는 살림’은 등지거나 모르는 얼거리 같습니다.


  《초등학생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살짝 짚기도 하지만, ‘고조선’이란 나라는 없습니다. ‘이씨조선’을 ‘조선’이라 하면서 옛나라 이름 앞에 ‘고-’를 붙일 뿐입니다. 우리는 ‘고조선’이 아닌 ‘단군조선·이씨조선’처럼 갈라야 알맞지 않을까요?


  ‘먼 조선(고조선)’이 아닌 ‘가까운 조선’이 ‘이씨조선’인 까닭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일본사람이 읊기 앞서 우리 스스로도 ‘이씨조선’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씨고려’를 무너뜨린 무리는 ‘이씨집안’이었거든요. 오백 해 내내 ‘이씨임금’이 우두머리를 차지하면서 위아래(신분질서)를 세웠어요. ‘이씨조선’이라는 이름은 사람을 위아래로 가른, ‘높은이·낮은이’로 금긋고서 따돌리거나 짓밟은 낡은 굴레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뜻을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대어 바라본다면 외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임금·벼슬아치·붓바치 눈높이가 아니라, 글을 모르고 글을 남긴 적이 없는 수수한 사람들 살림자리에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자취(역사)를 제대로 짚을 만합니다. 임금·벼슬아치·붓바치는 ‘이씨조선 터전에서 1퍼센트도 안 되었’습니다. 이름도 글도 남기지 않은 수수한 흙지기(백성)는 ‘99퍼센트에 이르는 우리 삶’이었습니다.


  오늘날 떠들썩하게 이름이 나오는 정치꾼·연예인·운동선수·문화예술인은 ‘1퍼센트도 안 됩’니다. 그러나 옛자취 아닌 오늘자취를 앞으로 ‘역사’란 이름으로 누가 남긴다고 할 적에는 ‘1퍼센트도 안 되는 몇몇 이름’을 바탕으로 쓰지 않을까요? ‘99퍼센트에 이르는 수수한 사람들 수수한 살림살이’를 역사·문화라는 이름으로 누가 남길 수 있을까요?


  몇몇 임금 이름을 외우는 일이 ‘역사공부’일 수 없습니다. 글을 몰랐고 글에 안 남은 수수한 우리 살림살이를 마음으로 되새기고 온삶으로 헤아리는 길이야말로 참다이 ‘살림읽기(역사공부)’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ㅅㄴㄹ


조선을 세운 사람들은 고조선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었을 거야. 자연히 고조선을 세운 이야기인 단군신화가 우리나라 건국신화가 된 것이고. (19쪽)


홍길동 무리의 도적질 때문에 사람들이 살기 힘들었다는 기록은 양반 지배층이 쓴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거니까 그들의 관점을 담은 것일 수도 있어. 홍길동이 어떤 활동을 했든 간에 이들의 눈에는 그저 도적으로만 보였을 테니까. (28쪽)


이 편지에서 원이 엄마는 ‘자네’라는 표현을 무려 열네 번이나 사용했어. 이러한 사실로 우리는 ‘자네’가 그 당시 부부 사이에서 상대방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거야. (50쪽)


그렇다고 일기가 사람들의 생활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닐 거야. 가난하고 힘없는 다수의 백성은 글을 몰라 자신의 기록을 남길 수 없었어. (61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것이므로 모든 사람은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하는 귀중한 존재라는 것이지. 동학의 평등사상은 신분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생활이 결정되는 양반 중심의 조선 사회를 부정하는 것이었어. (99쪽)


삼전도비는 반대로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면을 보여주고 있지? 이러한 문화유산은 없애는 편이 나을까? 아니면 곁에 두고 보면서 반성의 기회로 삼는 것이 좋을까? 우리가 유적과 유물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5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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