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까만새 (2022.9.20.)
― 남양주 〈블랙버드북숍〉
남양주라는 고장에 오늘 첫발을 떼었습니다. 이 고장에 있는 책집을 마실하려고 왔습니다. 먼저 〈곰씨네 그림책방〉에 들렀고, 〈블랙버드북숍〉으로 찾아갑니다. 두 곳 사이는 멀지 않습니다. 풀꽃나무 곁을 걷거나 골목을 지난다면 걸어갈 만한 길인데, 높다란 잿집(아파트) 둘레를 거쳐야 하기에 썩 걸을 만하지 않습니다. 잿집을 잔뜩 올린 곳은 어디나 뚜벅이를 보기 어렵습니다.
남양주 시내버스 가운데 하나인 ‘땡큐11’ 버스를 탑니다. ‘땡큐11’이라는 이름은 재미있기는 하되, 우리말로 ‘기쁨11’이나 ‘고마움11’이나 ‘웃음11’처럼 지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벼슬꾼(공무원)뿐 아니라 여느 일꾼(회사원)은 이름을 우리말로 지어서 누구보다 어린이한테 이바지하겠다는 마음이 없는 듯싶습니다. ‘어른 아닌’ 나이든 이들도 매한가지인 마음일 테고요.
맨발로 땅을 디디고, 맨손으로 흙을 살살 쓰다듬고서, 흙 쓰다듬은 손으로 나무줄기를 어루만지면, 나무가 무척 반깁니다. 이 얼거리를 아는 분이 있으나, 모르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우리는 어린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들려주거나 알려주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이 별과 이 땅에 어떤 마음을 씨앗으로 심는 말짓일까요?
어마어마하거나 놀랍거나 훌륭하거나 멋진 일을 뽑아내거나 해내야 하지 않아요. 조그마한 말씨랑 몸짓을 사랑으로 돌볼 일입니다. 누구나 보금자리에서 집안일부터 즐겁게 스스로 건사할 일입니다. 이불이며 옷가지를 개고, 빨래를 하고, 비질하고 걸레질을 하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일노래·놀이노래를 부르고, 사뿐사뿐 모든 걸음걸이를 춤사위로 누리고, 우리 땅을 돌아보고, 별빛을 헤아리고 햇볕을 머금고 빗물을 마시고 냇물에 손발을 담그면서 푸나무를 아낄 하루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걷습니다. 잿집 사이에 야트막하게 작은숲이 남았습니다. 새로 심은 듯한 거리나무는 아직 작고 가늘고 여립니다. 앞으로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지나면 이 거리나무는 마을을 새롭게 밝힐 테지요. 〈블랙버드북숍〉 앞에 서는데 안 열렸습니다. 살짝 다른 볼일을 보러 비우신 듯합니다.
등짐을 내려놓습니다. 어제 새로 쓴 노래꽃 한 자락을 옮겨적습니다. 부릉거리는 쇳소리 사이로 바람이 나뭇잎을 살랑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부릉이(자동차)가 없어도 뭇목숨은 살아갈 수 있으나, 나무가 없으면 다 죽습니다. 잿집이 아니어도 살림할 수 있으나, 꽃과 벌나비와 새가 없으면 몽땅 죽습니다.
바느질에도, 손으로 쓰는 글에도, 한 땀 한 땀에는 언제나 손길에 서리는 즐거운 바람이 스밉니다. 숲빛으로 한 줄씩 적은 글을 나누는 이웃이 늘기를 빕니다.
ㅅㄴㄹ
《쉬운 말이 평화》(숲노래 밑틀·최종규 글, 철수와영희, 2021)
.
.
책집마실을 하며 찍은 사진을
한동안 거의 못 씁니다.
예전 하드디스크가 잠들었거든요.
인스타그램에 걸친 사진을
몇 자락 살리면서,
다른 사진을 조금 곁들입니다.
남양주 책집마실을
새롭게 누릴 날을
손꼽아 보는 마음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