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넋 / 숲노래 우리말 2023.1.22.
곁말 89 글물
삶·살림·사랑을 이야기로 들려주던 사람들은 말이면 넉넉했습니다. 숲빛이며 들빛이며 하늘빛에 모든 이름이 서리고, 집살림·옷살림·밥살림을 가리키는 말에 모든 숨결이 깃들거든요. 손수 짓고 펴고 나누고 사랑하는 나날에는 마음을 그리는 말로 하루가 즐거웠습니다. 마음을 담는 말이니, 말을 내놓을 적에는 언제나 ‘마음에 흐르고 새긴 생각’을 소리로 옮기게 마련이라, 한 마디를 뱉거나 읊어도 머리에 또렷하게 남아요. 삶·살림·사랑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길하고 등지면서 울타리를 세우고 힘·이름·돈을 거머쥐는 무리가 불거지더니 ‘글’이 태어났습니다.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는 사랑길에서는 글이 굳이 없어도 모든 이야기를 고이 아로새겨 노래로 남겼다면, 위아래로 가르고 높낮이를 따지는 굴레에서는 글을 앞세워 억누르거나 윽박지르기 일쑤였고, 우두머리·임금·벼슬아치를 우러르는 글을 잔뜩 엮었어요. 말뿌리하고 글뿌리가 다릅니다. 어울리고 어우러지는 말이라면, 높이거나 낮추는 글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말이 글에 물들어, 말조차 위아래나 높낮이가 생기고, 글을 종이에 얹는 살림이 생깁니다. 글을 쓰거나 찍으려고 글물을 마련합니다. 먹물은 시커멀 수 있지만, 어질게 다스려 꽃물이나 빛물로 갈 수 있습니다.
ㅅㄴㄹ
글물 (글 + 물) : 1.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물. 글·그림·사진을 종이에 찍는 물. (= 그림물·꽃물·빛물. ← 묵수墨水, 잉크ink) 2.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사람. 또는 글힘·그림힘을 내거나 펴는 사람. 글힘·그림힘이 있거나 부리는 사람. 글·그림으로 생각을 펴거나 알리는 사람. (= 먹물. ← 학식學識, 학문, 학술, 지식, 인문, 인문지식, 지식인, 작가, 학자, 전문, 전문가, 선생, 교수敎授, 대학교수, 문필가, 문인)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