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자라나고 싶다면 (2021.10.29.)

― 서울 〈숨어있는 책〉



  시키는 일이기에 ‘심부름’입니다. 나라일이란 ‘심부름’이라고 합니다. 나라지기도 벼슬꾼(공무원)도 ‘들풀 같은 사람들이 바라는 길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고서 하나하나 할 노릇’이기에 ‘나리’가 아닌 ‘심부름꾼’일 노릇입니다.


  모르는 분이 더 많은 듯싶은데 ‘통령·대통령’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우리는 이 일본말을 여태 그냥 씁니다. 일본에서도 ‘통령’이 일본말인 줄 모르는 사람이 있겠지만, 아는 사람도 많아요. 굳이 일본 눈치를 볼 까닭은 없으나 ‘낡은(군국주의 시대) 일본말’을 제 나라 꼭두지기 이름으로 쓰는 우리나라입니다.


  한자를 안 써야 하지 않습니다만, 쓸 자리를 가려서 쓸 일입니다. 나라일을 맡는 꼭두지기를 우리말로 이름을 새롭게 붙일 줄 모른다면, 우리 스스로 아직 넋을 추스르지 못 한다는 뜻이요, 눈먼 굴레에 갇혔다는 뜻입니다. ‘학교’에서 쓰는 말도 죄다 일본말이지요. 우린 언제쯤 ‘선생·교사·교장·교감·수업·과목·교과서·급식·구령대·조회’ 같은 굴레를 벗을 수 있을까요.


  생각하지 않기에 굴레를 뒤집어쓴 줄 모릅니다. 조금 생각한다면 굴레를 느낍니다. 생각에 날개를 달면 스스로 굴레를 내려놓거나 벗습니다. 하늘빛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생각으로 바다를 품고 바람을 안으면 누구나 홀가분합니다. 누가 시키는 대로 외우면 심부름을 하듯 굴레에 갇히는 마음입니다. 차근차근 말빛을 고르기를 바라요. 몸하고 마음이 자라나는 어린이처럼, 몸짓도 마음빛도 자라날 어른입니다. 반짝반짝 생각을 가꾸어 살림을 짓기에 ‘어른’이라는 이름입니다.


  꿈은 크기가 없습니다. 사랑도 크기가 없습니다. 말도 마음도 크기가 없어요. 오롯이 꿈이고 사랑이고 말이고 마음이에요. 꿈·사랑·말·마음은 깨지지도 부서지지도 망가지지도 더러워지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꿈이 있기에 스스로 빛나고, 사랑으로 말하기에 스스로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까닭을 알까요? 빠져도 새로 나는 줄 늘 보여주거든요. 이가 빠지든 손톱이 빠지든 다시 날 만합니다. 다시 나지 않으면 죽음이거든요.


  가을빛이 깊은 날에 〈숨어있는 책〉에 찾아듭니다. 배우고 싶기에 책집을 찾아갑니다. 새로 나오는 책만으로는 배울 수 없기에, 이미 나왔으나 모르고 살아온 책을 만나려고 헌책집에 깃듭니다. 널리 팔리지 않았어도 속깊이 이야기씨앗을 품은 책을 하나둘 쓰다듬으면서, 한때 널리 팔린 듯싶으나 이내 사라지는 얄팍한 책을 새록새록 만지작거리면서, 새롭게 나눌 길을 그립니다. 눈에 보이는 무엇을 나누어야 나눔이지는 않아요. 하루를 즐거이 한 걸음씩 내딛는 마음으로 나눕니다.


ㅅㄴㄹ


《가버린 부르조아 세계》(나딘 고디머/이상화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8.5.25.)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창작과비평사, 1982.6.5.)

《法 속에서 詩 속에서》(최종고, 교육과학사, 1991.10.20.)

《생명과 희망》(채수명/채승석 옮김, 예찬사, 1986.8.10.)

《日本神話》(박시인, 탐구당, 1977.5.30.)

《マンガ 韓國現代史》(金星煥·植村隆, 角川ソフィア文庫, 2003.2.25.)

《분교마을 아이들》(오승강 글, 인간사, 1984.5.5.첫/1987.7.10.두벌)

《질서속에 민주발전을 이룩하는 해(1989년도 노태우대통령 연두회견 전문)》(노태우 말, 문화공보부, 1989.1.20.)

《朝鮮のこころ》(金思燁, 講談社, 1972.9.28.)

《朝鮮民族を獨み解く》(古田博司, 筑摩書房, 2005.3.10.)

《新朝鮮事情》(Jacques PezeuMassabuau/菊池一雅·北川光兒 옮김, 白水社, 1985.6.25.)

《밥상 아리랑》(김정숙 글/차은정 옮김, 빨간소금, 2020.3.27.)

《1파운드의 복음 1》(타카하시 루미코/권경일 옮김, 서울문화사, 1999.3.30.)

《1파운드의 복음 2》(타카하시 루미코/권경일 옮김, 서울문화사, 1999.4.30.)

《1파운드의 복음 3》(타카하시 루미코/권경일 옮김, 서울문화사, 1999.6.30.)

《황새울 편지》(윤정모, 푸른숲, 1990.1.5.)

《한글을 세계문자로 만들자》(박양춘, 지식산업사, 1994.10.9.)

《流言蜚語論》(원우현 엮음, 청람, 1982.4.20.)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새론기획 대학신서 편집회의, 새론기획, 1980.9.1.)

《군종신부》(정승현, 성바오로출판사, 1981.11.10.)

《咸錫憲 人生論》(함석헌, 정우사, 1978.5.20.)

《航空·宇宙의 世界》(홍성균, 일지사, 1975.6.5.)

《李光洙全集 第十九卷》(이광수, 삼중당, 1963.9.20.)

《黃順元全集 第三卷》(황순원, 창우사, 1964.12.15.)

《民衆時代의 文學》(염무웅, 창작과비평사, 1979.4.25.)

《선택》(새로운인간 기획실 엮음, 한마당, 1987.11.15.)

《강아지풀》(권오삼, 교음사, 1983.5.1.)

《그 빛속의 작은 生命》(김활란,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65.2.25.첫/1983.9.15.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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