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애장판 6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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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숲노래 푸른책 2023.1.14.

덧살이와 함께살기 사이



《기생수 6》

 이와아키 히토시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3.10.25.



  《기생수 6》(이와아키 히토시/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3)을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누구나 매한가지인데, 잘 하는 일이나 못 하는 일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만 있어요. ‘하는’ 일만 있습니다.


  우리말 ‘하다’를 알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이 삶을 모르는 굴레에 갇혀서 헤맬 뿐입니다. 밥을 하고 말을 합니다. 일을 하고 놀이를 합니다.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노래를 하고 살림을 합니다. 사랑을 하고 절을 합니다. 같이 하거나 혼자 해요.


  하기에 살아요. 무엇이든 하기에 삶이 있어요. 무엇이든 안 하면 삶이 없습니다. 잘 했구나 싶어도 못 했구나 싶어도 고스란히 배우는 자취입니다. 좋아할 까닭도 싫어할 까닭도 없습니다. 반길 까닭이나 꺼릴 까닭이 없어요. 그저 하면서 보면 되고, 오롯이 하면서 언제나 하나로 다스리면 넉넉합니다.


  한자말 ‘기생’은 흔히 ‘기생충’처럼 쓰곤 하는데, ‘거머리’나 ‘붙어먹다’를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덧살이·더부살이’나 ‘묻어살다·들러붙다’이기도 합니다.


  사람한테 스며들어 더부살이를 하는 작은 짐승이니 ‘덧짐승(기생수)’일 텐데, 사람하고 별(지구)을 나란히 놓고서 헤아려 봐요. 별이 없이 사람이 있을 수 있나요? 사람이 있기에 별이 별다울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참말로 사람빛이나 사람됨이 있는가요? 서로 치고박거나 죽이거나 괴롭히는 끔찍한 총칼질(전쟁)이 참말로 푸른별에 이바지하거나 사람다운 길일까요?


  사람끼리 서로 죽이는 바보짓인 총칼(전쟁무기)을 목돈을 들여 만든 다음에, 목돈을 받고서 팔아치울 수 있으면 나라살림에 이바지하는 셈인지 스스로 물어볼 노릇입니다. 더 세고 더 놀라온 총칼을 만드는 데에 언제까지 목돈을 들여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볼 노릇입니다. 이 나라에도 ‘국방과학연구소’란 데가 있어 돈을 펑펑 써대는데, 참말로 ‘총칼로 사람을 죽이는 짓’에 ‘과학’이란 이름을 붙여도 어울릴까요?


  이제는 저마다 마음을 열고서 스스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나라에서 뒷배를 하는 곳에서 목돈을 받고서 일하는 숱한 사람들은 살림길이 아닌 죽음길에 온힘을 쏟는 판입니다. 나라일(정치)을 한다는 숱한 벼슬아치는 참말로 나라일을 하는 듯싶지 않지만, 우리는 때가 되면 뽑기(선거)를 자꾸 하며, 이런 뽑기에 허벌난 돈을 펑펑 써댑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라면, ‘돈벌이’가 아닌 ‘살림’을 배우고 나누며 어깨동무할 노릇입니다. 바느질을 배우고, 길쌈을 배우고, 아기돌봄을 배우고, 손빨래를 배우고, 밥짓기를 배우고, 풀꽃나무랑 마음으로 속삭이는 눈빛을 배우고, 해바람비를 읽는 눈썰미를 배우고, 별빛을 품고 이슬처럼 맑은 숨결로 살아가는 하루를 배울 노릇입니다.


  그림꽃 《기생수》에 나오는 덧짐승(기생수)은 사람한테 깃들며 두 갈래 길을 갑니다. 첫째는 스스로 생각하며 함께살기를 배우려 합니다. 둘째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몸에 끄달려’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 길을 갑니다. 우리는 첫째처럼 함께살기라는 길을 가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둘째처럼 사람끼리 물어뜯고 잡아먹는 굴레에 갇힌 살덩이인가요?


ㅅㄴㄹ


“내가 살기 위해 내가 한 짓이야. 알겠어? 너와 나는 협력관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종이 다른 생명체다. 각각의 종이 갖는 성질을 되도록 존경하고, 자기 측의 이념을 강요하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후, 우리의 공동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 그건 우선 ‘살아남는’ 거야, 안 그래?” “그래.” (13쪽)


‘타무라 레이코. 어찌됐건 순간적으로 느꼈다. 달라. 다른 ‘동족’들과 다르다! 위험해. 위험하다! 우리 ‘동족’들에게!’ (56쪽)


‘신비해. 이 아이는 너무 신비스럽다. 이 세계는 불가사의한 것이 너무 많아. 어째서 우리는, 기생생물은 왜 태어났을까?’ (57∼58쪽)


“설마, 거기까지 계산하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인간답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124쪽)


“인간의 감정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지. 하지만 우리는 극히 약한 존재.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포체일 뿐이야. 그러니까 너무 미워하지 마.” (183쪽)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나는 뭣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한 가지 의문이 풀리면 또 다음 의문이 솟아올랐지. 기원을 찾아, 꿈을 찾아, 생각하면서 그저, 계속 걸어왔어.” (219쪽)


“지난번에 인간의 흉내를 내며, 거울 앞에서 큰소리로 웃어 봤어. 기분이 무척이나 좋더군.” (22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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