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디자인이 될까요? - 부정에서 긍정으로, 내 감정 내 마음대로
고선영 지음 / 다른상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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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1.8.

인문책시렁 263


《애정결핍》

 고선영

 악어책방

 2020.8.20.



  《애정결핍》(고선영, 악어책방, 2020)을 곰곰이 읽었습니다. 서울 우장산 곁에서 마을책집을 꾸리는 글님은 마을 어린이하고 책이웃을 마주하면서 글빛·삶빛을 나누는 하루를 짓습니다. 조그맣게 여민 꾸러미에는 조그맣게 살아온 발자취를 조그맣게 옮겨적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무엇이고, ‘애정’이란 무엇일까요? 먼저 한자말 ‘애정(愛情’을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1. 사랑하는 마음 2. 남녀 간에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풀이합니다만, 또 ‘사랑 :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처럼 풀이합니다만, 두 낱말풀이는 그다지 맞갖지 않구나 싶습니다.


  숲노래 씨는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여미면서 ‘사랑’ 뜻풀이를 “1. 어떤 사람·넋·숨결·마음을 무척 곱고 크며 깊고 넓고 따스하게 여기다 (마음으로 돌보면서 따스하고 즐거운 빛을 나누다. 섞이면서 마음을 읽고 나누어 하나가 될 줄 알아 새롭게 빛나는 숨결을 그리다. 이도 저도 아닌, 티도 먼지도 흉도 없는, 오롯이 밝은 숨결. 사람이 살림을 하면서 짓는 빛)”으로 붙였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면 “빛나면서 따스하고 즐거워 아름다운 숨결”이 바탕입니다. 네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네 가지가 하나로 어우러지기에 사랑입니다.


  요사이는 ‘심리학 용어’처럼 ‘애정결핍’이란 일본말씨를 두루 쓰는 듯싶은데, 우리말로 옮기고 풀어내어 우리 스스로 삶과 살림을 수수하고 새롭게 바라보는 첫발을 떼어야지 싶습니다. 이를테면, 사랑이 무엇인가 하고 조금 더 보탤 수 있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하늘빛으로 물들면서, 햇빛·햇볕·햇살로 드리우거나 퍼지면서, 별빛으로 반짝이면서, 꽃빛으로 피어나면서, 숲빛으로 푸르고 물빛으로 맑게 지어서 나누는 즐겁고 아름다운 기운”이기에 ‘사랑’이라고 할 만합니다.


  남이 나한테 베풀어야 사랑이지 않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지으면서 활짝 웃기에 사랑입니다. 뭔가 얻거나 이루어야 사랑이지 않습니다. 높낮이도 위아래도 크기도 따지지 않으면서 빛나는 길이기에 사랑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흐르는 모든 목숨붙이는 사랑입니다. ‘사랑받지 못한 목숨’은 없어요. 목숨으로 태어났다면 저마다 다르게 사랑입니다.


  사랑일 적에는 스스로 즐겁게 피어나는 기운이니, 스스로 즐거운 사람은 스스로 웃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도란도란 수다판에 사랑이 흐르고, 오순도순 살림살이에 사랑이 감돌아요. 토닥이는 손길은 토닥임입니다. 달래는 손길은 달램입니다. 토닥이거나 달래는 손길이 ‘사랑손’일 적에는 앙금도 티끌도 앓이를 가만히 녹여서 누구나 스스로 기운을 끌어올려 일어서도록 북돋아요.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고 여길 만한 어린 나날을 보낸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사랑을 못 받았으면, 오늘부터 우리 스스로 사랑을 새롭게 지으면 됩니다. 어제 겪은 일을 오늘 우리 곁 아이들한테 풀어내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랑이라면 모두 웃음꽃씨로 풀어내어 새봄에 새싹으로 돋을 푸른숲으로 나아가는 첫 발자국을 뗄 테지요. ‘사랑받기’나 ‘사랑주기’가 아닌, 오롯이 ‘사랑하기’로 이 하루를 살아가기에 눈부십니다.


ㅅㄴㄹ


친구들과 누가 더 불행한가 까놓고 이야기했던 날 나는 알게 되었다. ‘아빠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꼬였어.’ 그럴듯했다. 내 인생이 안 풀리는 걸 핑계 대기 딱 좋았다. (14쪽)


엄마 말 그대로 술 처먹은 아빠가 왔다. 불안하다. 불안함은 언제나 예상한 일들을 어김없이 데려온다. 나는 우리 집의 귀한 남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22쪽)


집으로 가는 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을버스가 뿌옇게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매일 생각했다. ‘언제쯤 지긋지긋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37쪽)


“앗 뜨거워, 안 뜨거.”, “뜨거워.”를 연발하면서 후후 불다가 입에 넣고 감 빼며 오물오물 먹었다. 절굿공이로 찧다가 힘들면 언니가, 언니가 찧다가 힘들면 이번엔 엄마가, 엄마가 찧다가 힘들면 이번엔 할머니가. (63쪽)


그때는 왜 몰랐을까. 엄마가 힘들었을 거라는 걸. 버스에 타면 어느새 우리는 전멸. (6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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