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12.30.

수다꽃, 내멋대로 31 신문배달



  열여덟 살 푸름이(고등학생)로 지내던 1993년 11월 17일, 푸른배움터 길잡이가 내 머리 한켠에 구멍을 내었어도 꺼리지는 않았다. 고작 0.5센티미터가 ‘학교 규정보다 길다’고 내세우는 길잡이한테 “두발검사를 어떻게 한다는 규정부터 보여주고서 자르시지요?” 하고 대꾸했다. 길잡이는 ‘두발검사 학교 규정’을 보여준 적이 없다. “임마, 내 말이 규정이다, 왜? 떫냐?” 하더라. 이이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그래요? 저는 머리에 구멍이 나도 아깝거나 힘든 일이 없습니다만, 학교에서 후회하실 텐데요?” 하고 얘기했다. 다른 동무는 머리에 난 구멍을 감추려고 박박 밀더라. 나는 머리에 난 구멍을 안 감추고 버젓이 다녔다. 이 꼴을 보다 못한 길잡이는 “넌 돈이 없어서 손질을 안 하냐? 보기 흉하다. 내가 돈 줄까?” 하고 묻기에 “보기 흉한 줄은 알고서 머리에 구멍을 내셨나요? 머리 손질할 돈은 아깝습니다. 책을 사읽을 돈을 주신다면 기꺼이 받지요.” 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대꾸했다. 긴머리로 살아갈 마음은 없었으나, 얼결에 긴머리를 하는 차림으로 바뀌었다. 긴머리가 되고 보니 둘레에서 “남자가 보기 흉하게 왜 머리를 길러?”라든지 “너 불량배야? 왜 머리를 안 깎아?”라든지 “락가수라도 하게?” 하고 묻더라. 그리고 ‘긴머리 사내’이기 때문에 어떤 곁일(알바) 자리도 얻을 수 없었다. 얼굴보기(면접)를 하는 자리에서 “마음이 아닌 머리카락 길이로 일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를 따질 수 있는가요?” 하고 묻는들 부질없는 노릇이다. 푸른배움터를 마치고서 한 해 동안 곁일을 하나도 못 하면서 지내자니 살림돈이 그야말로 바닥인데, 푸름이로 지내면서 틈틈이 하던 새뜸나름(신문배달)이 떠올랐다. 열린배움터(대학교) 앞 신문사 지국에 찾아갔다. “응? 네가 신문 돌리게? 근데 머리가 왜 이렇게 길어? 뭐, 대학생이니 머리가 길 수도 있지. 그리고 새벽에 신문 돌리는 사람이 머리가 짧든 길든 아무도 안 쳐다보니까 너도 날마다 안 빠지고 나오면 일할 수 있어. 내일부터 나올래?” 1994년에는 아무런 일자리를 못 얻었다면, 1995년 4월에 드디어 곁일을 할 자리를 찾았다. 신문사 지국에서 먹고자면서 새뜸나름이로 일했다. 자전거를 달리는 새뜸나름이로 일하니, 이때부터 일감이 하나씩 풀렸다. 배움책숲(대학도서관)에서도 “신문배달부로 일한다면 근면할 테니 머리카락 길이쯤은 상관없습니다.” 하면서 ‘배움책숲 책 정리 근로장학생’으로 1995년 11월 5일까지 일했다. 왜냐하면 이해 11월 6일에 군대에 끌려가야 했으니 더 일할 수는 없다. 배움책집(대학 구내서점)에서는 “신문배달부에 도서관 근로장학생으로 일한다면 성실할 테니 잘 부탁하네. 군대에 다녀와서도 일해 주면 좋겠는데.” 하더라. 1998년 12월에 〈한겨레신문〉에서 나를 ‘특채(특별채용) 기자’로 뽑아 주겠다고 했지만, “한겨레신문이 언제나 ‘학력제한 없음’을 내거는 만큼, 대학생 아닌 몸인 채 일반시험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토익점수 제출’을 없애고 ‘영어 면접’으로 바꾸어 주시면, 특채 아닌 공채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하고 여쭈었다. 〈한겨레신문〉은 ‘영어면접 아닌 토익점수 제출’이란 틀을 버릴 수 없다며, 그러면 나를 특채로는 못 뽑겠다고 밝혔다. 1999년 6월에 ‘보리출판사’에 얼굴보기(면접)를 하러 갔다. 이곳에서는 ‘학력제한 없음’이라 내걸었기에 ‘대학 자퇴 = 고졸’인 배움끈으로 기꺼이 넣었다. 보리출판사에 전화로 “그런데 어떤 차림으로 가야 하나요?” 하고 여쭈니 “평소 일하는 차림대로 오셔요.” 한다. 그래서 ‘새뜸나름이로 새벽에 일하는 차림’으로 갔더니 출판사 사람들 모두 책상을 치면서 웃더라. 새벽에 새뜸나름이로 일하자면 온통 땀범벅이라 민소매에 깡똥바지 차림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이 차림새로 갔는데 “누가 면접에 이런 차림으로 와? 다들 양복 입고 오지!” 하더라. 가만 보니 그렇다. 01시 30분에 일어나 04시 30분에 일을 마치는 새뜸나름이로 일했으니, 이무렵 깨어서 움직이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새뜸나름이가 어떤 차림새’인지 다들 모르게 마련이다. 그나저나 1993년 가을에 푸른배움터 길잡이가 내 머리에 구멍을 안 냈다면, 나는 이런저런 길을 이러구러 걸었을까? 머리에 구멍이 안 났으면 ‘대학생 과외’라든지 곁일자리를 꽤 쉽게 얻었을 테고, 퍽 다르게 살아왔을는지 모르지만, 다른길을 걸었더라도 마음은 한결같았으리라 본다. 난 그저 내 다리가 이끄는 대로 걷고 달리고 자전거하고 함께살기를 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보리출판사에서 한창 일하던 2000년에

문득 찍힌 모습 (오른쪽이 숲노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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